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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가 가져다준 깨달음
03/30/20  

존스홉킨스 대학 집계에 따르면 3월 26일 오후 7시 50분 기준,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8만 3,836명, 사망자 1,201명에 달한다. 이로써 미국은 8만 1,782명의 누적 확진자가 나온 중국보다 확진자가 더 많아지며 세계에서 누적 확진자가 가장 많은 국가가 됐다. 현재 전 세계에는 약 52만 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2만 5천여 명이 숨졌다. 검사를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감안한다면 확진자 수는 우리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을 것이다.

 

미증유(未曾有)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정말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세상이다. 하루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바이러스로 죽어가고 있으나 속수무책이다. 확산을 막기 위해 전 세계가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이 사태의 마무리는 요원해 보인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며 최소한 1미터∼2미터의 거리를 두고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권장하더니, 확진자수가 늘어나고 점점 더 확산되는 추세를 보이자 이제는 아예 문밖을 나서지 말고 당분간 집안에서 생활할 것을 권하고 있다. 생필품 판매업소나 병원, 약국, 언론사 등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사업장과 식당들이 문을 닫았다. 식당의 경우는 투고나 딜리버리 서비스만 가능하다. 꼭 움직여야 할 필요가 없다면-필요한 물품 구입을 위해서가 아니라면-통행, 혹은 친지 방문도 삼가야 한다. 한 마디로 돌아다니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사람을 꼭 만나서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직접 만나 손에서 손으로 전해줘야 할 것도 있다. 얼마 전 나에게도 친구에게 직접 물건을 전해줘야 할 일이 생겼다. 나와 친구는 맥도날드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먼저 도착한 나는 커피를 두 잔 사서 한 잔을 마시면서 차 밖에서 친구를 기다렸다. 그리고 친구가 도착하자마자 물건을 전달하고 사두었던 커피를 건넸다. 멀찍이 서서라도 마주보며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용무를 마치자마자 친구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김치찌개 한 냄비 앞에 놓고 네 잔 내 잔을 바꿔가며 술잔을 주고받던 친구였다. 팥빙수를 한 그릇 시켜 놓고 함께 떠먹던 친구였다. 기쁘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얼싸안고 어깨를 두드리며 축하하고, 격려하고, 위로하던 우리였다. 그런데 간첩 접선하듯이 만나 물건을 주고받고는 서둘러 떠야 했다.

 

시동을 켜고 후진기어를 넣고 차를 빼려하는데 자동차 한 대가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주차한 차의 운전석 창문이 열리더니 운전자가 그 차의 왼편에 주차되어 있던 차를 향해 뭐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러자 옆 차의 조수석 창문이 열렸다. 두 사람도 우리와 같은 장소에서 만나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자동차 안에 앉은 채 인사말을 건네고 대화를 시작했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 차 안에 앉은 채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각종 식료품을 비롯한 물품으로 가득 차있어야 할 마켓의 진열대가 텅텅 비어 있고, 물과 휴지 등을 살 수 없다는 뉴스를 보고 놀라고 있을 때였다. 보스턴에서 일하고 있는 막내아들이 재택근무라며 집으로 온다고 연락해 왔다. 마침 쌀이 떨어져 가고 있던 터라 마켓에 쌀을 사러 가면서 없으면 어떡하나 은근히 걱정했다. 다행히 쌀은 잔뜩 쌓여 있었다. 화장실용 휴지도 사려고 했으나 눈에 띄지 않아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물건을 진열하자마자 바로바로 다 나간다면서 다음날 아침에 다시 오면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구로부터 도움 받을 일이 있었다. 친구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친구가 소개해준 전문가는 내 고민을 말끔하게 해결해 주었다. 이어 친구에게 사업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6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한 달 임대료가 모두 합해 $48,000이라면서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와중에 친구는 종업원에게 10인 분을 싸라고 하더니 식당 문을 나서는 나를 따라 나와 자동차까지 와서 실어주었다. 요즈음 같이 어려운 때에 그럴 수 없다며 돈을 내려하자 극구 사양했다. 본인도 어렵고 힘들 텐데, 친구에게 몇 끼를 해결하라며 건네주는 그의 마음을 기꺼이 받기로 했다.

 

오늘날 우리 인류는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주 정복을 위해 우주 탐험선들이 분주히 하늘을 날고 있고, 심지어 온갖 동식물들을 인류가 원하는 속성을 지닌 생명체로 마음대로 만들어내고 있다. 그뿐 아니라 제한된 영역이긴 하지만 인공지능 등을 통해 사람이 하는 일을 로봇이 대신하기도 한다. 그렇다보니 인류는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세상의 질서를 바꿀 수 있다는 오만과 교만에 사로잡힌 듯 보인다. 코로나19는 이런 인류를 향한 대자연의 경고이다. 우주의 질서 속에서 인류가 얼마나 작은 존재에 불과한지 다시 깨닫게 하기 위한 가르침의 도구이다. 이런 면에서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눈으로는 그 실체를 확인할 수조차 없는 바이러스가 인류의 삶을 멈추게 할 수도 있다는, 그래서 타인과 더불어 사는 겸손한 삶에 대한 깨우침을 주기 위한 아픈 채찍질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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