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봄
04/23/18  

봄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이 내리고나니 마른 가지에 연두색 새싹봉오리가 수줍게 얼굴을 내민다. 만물이 움트는 새 봄이다. 미세먼지가 극성이긴 하지만 날이 포근해져 칙칙하고 두꺼운 패딩 대신 가벼운 옷차림으로 외출할 수 있게 되니 마음까지 가벼워진다. 혼자라도 좋으니 시간을 내어 분위기 좋은 카페 창가에 앉아 차 한 잔 마시며 여유 부리고 싶은 봄인데…… 한국에 와서 맞이한 나의 첫 3월은 시작과 동시에 끝나버린 것만 같다.


사람마다 각기 다르겠지만 엄마들에게 3월의 핫 키워드와 빅 이슈는 두말할 것 없이 개학과 학부모총회이다. 3월 초에 새 학년 개학을 하고 몇 주 후에 공 개수업, 학부모 총회, 학부모 상담 등 모든 것이 연이어 진행되기 때문이다. 한 학교에 아이 셋이 다니고 있는 나의 경우,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진행되는 공개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 1층부터 4층을 오르락내리락 뛰어다녀야만 했다. 그리고 아이를 셋이나 학교에 맡겨 두었으니 학교 일에 참여하는 것이 좋겠다싶어 학부모회, 녹색어머니회에 자원했더니 어떤 날은 하루에 네 번씩 학교에 가야 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공개 수업이나 학부모 총회에서 만난 학부모들과 잠깐 이야기해 보니 이 모든 것들이 상당한 스트레스라고 토로했다. 일 년 중 딱 하루, 길지도 않은 시간인데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처음 만난 선생님과는 어떻게 인사를 하지? 어떤 학부모 활동을 해야 하지? 임원을 시키면 어쩌지? 처음보는 엄마들과는 무슨 이야기를 하지? 마치 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처럼 두근두근 걱정되는 마음에 더해진 한 가지, 바로 “뭐 입고 가지?”가 가장 큰 관심사이자 고민이라고 했다. 오죽하면 ‘학부모 총회 패션’, ‘총회 룩’이라는 말도 있고 검색창에 학부모 총회를 검색하면 학부모 총회 패션이 연관 검색어로 뜰 정도이다.


담임 선생님은 물론 같은 반 학부모들을 만나 인사하는 자리이고 첫인상을 아예 무시할 수도 없으니 자연스레 옷차림에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지금 잠깐 검색해 보니 학부모 총회 패션이란 대충 이러하다. 너무 화려하거나 야하게 보여서는 안 되고 멋을 낸 듯 안 낸 듯 자연스럽되 단정하고 지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한다. 집에서 자다 나온 듯 너무 편안한 복장은 안 되지만 그렇다고 명품으로 칭칭 휘어감지도 말고 스카프, 신발, 가방 등으로 센스있게 포인트를 준다. 엄마가 된 이후로 옷차림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살다가 마치 면접이나 맞선보러 가는 사람처럼 오랜만에 옷차림 때문에 고민을 하게 되니 스트레스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공개 수업 날 내가 만난 대부분의 엄마들은 수수한 차림이었다. 물론 그 엄마들이 정말 학부모 총회 패션을 검색하고 새 옷을 장만해서 입고 왔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 학교 엄마들이 그리 유난스럽지는 않겠다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옷차림보다는 기대 반, 걱정 반 아이들을 바라보는 엄마들의 표정부터 눈에 들어온다.


공개 수업은 학부모가 교실 뒤에 쭉 서서 아이들이 수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인데 평상시의 수업 모습이라기 보다는 공개 수업을 위해 준비된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이기에 공개 수업 때 애가 타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고 담임 선생님과 학부모일 것이다. 연신 책상 의자에서 엉덩이가 들썩들썩 떨어지는 아이들이 서너 명, 손을 들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큰 소리로 말하는 아이들이 두세 명, 엄마 얼굴 보고 싶어서 쉬지 않고 뒤를 돌아보는 아이들이 두세 명, 발표는 커녕 고개 푹 숙이고 책상만 쳐다보는 아이들까지…… 공개 수업은 아직도 아기같아 조마조마 걱정되다가도 어느새 이만큼 컸나 싶어 대견하기도한 복잡미묘한 감정을 안겨준 시간이었다.


워킹맘으로 바쁘게 살 때는 이 좋은 봄에 사무실에 앉아 일만하는 것이 안타까워 푸념을 했었다. 그리고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면 마음껏 계절을 만끽하고 나를 위한 여가 시간을 누리며 자기 개발에도 힘쓸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전업주부는 말 그대로 “다른 직업에 종사하지 않고 집안일만 전문으로 하는 주부”이다. 전업주부가 되면 가족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바가 다르고 나의 마음가짐도 달라지기 때문에 마냥 여유를 즐길 틈이없다. 


그래서 나의 봄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열렬할 예정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봄이 좋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