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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럽고 치사해서...
04/06/20  

사람들은 흔히 더럽고 치사한 상황에서 "드럽고 치사해서…..."라고 뒤끝을 흐리며 말한다. 이 한 마디는 모든 것을 정리해주며 우리 모두는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다. 정말 입에 착 달라붙는 말이기도 하다. “드럽고 치사해서……”에서 특히 이 줄임표는 수많은 의미를 담고 있으며 말하지 않았음에도 핵심이며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살면서 누구나 더럽고 치사한 경험을 해봤고 그런 상황에 놓여봤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수두룩하다. 부모 둥지 안에 살 때는 그마저도 더럽고 치사해서 빨리 독립할 꿈만 꾸었다. 그래서 대학에 다니면서도 쉬지 않고 일했고 부모에게 손 벌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열심히 살았다.  직장에 다닐 때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더럽고 치사한 상황을 넘기며 내 사업의 꿈을 키웠다. 생각해보면 인생에 있어 적당히 더럽고 치사한 순간은 꼭 필요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절실한 마음만이 사람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 나의 선택이나 액션들이 다 옳았던 것만은 아니다. 하루라도 빨리 부모를 벗어나 독립하고 싶어서 만세를 부르며 집을 떠났지만 그때 한 2년만 더 부모 슬하에 있었다면 꽤 많이 절약하고 혹독한 빚더미 인생이 조금은 늦게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부모와 함께 사는 우리 집에서는 모든 것이 공짜였는데 애송이였던 나는 그때 눈에 뭐가 씌었는지 그저 집을 떠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경제적인 면을 따졌을 때 굉장히 잘못된 선택이었지만 솔직히 그 2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시간이었다고 추억한다. 평생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단 둘이 보냈던 날들로 소꿉 장난하듯 밥을 해 먹고 아직 학생이었던 남편이 공부할 때면 옆에서 드라마를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찰떡처럼, 샴썅둥이처럼 붙어 다녔다. 2년 후 아이가 생겼고 그 후로는 아이가 줄줄이 생겨 다시는 그런 꿈같은 날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으니 무리해서 독립했던 것도 뭐 결과가 그리 나빴던 것만은 아니다.

 

고3 때부터 쉬지 않고 일하면서도 더럽고 치사한 순간은 쉴 새 없이 찾아왔다. "남의 돈 벌기 어렵다"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정말 돈을 거저 주는 직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나마 부모한테 용돈을 받는 편이 훨씬 덜 더럽고 치사할 것이다. 돈을 주는 고용주는 그만큼 아니 그 이상 충분히 나를 활용하려 들기 때문에 오랜 직장 생활은 나의 몸과 영혼을 너덜너덜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오너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고 서른이 되기 전에 그 꿈을 이루었다. 물론 이 선택과 액션 역시 파란만장함을 안겨주었지만 오너로 사는 동안 제대로 인생의 민낯을 마주할 수 있었으니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음은 분명하다.

 

인생은 어차피 더럽고 치사한 순간의 연속이다. 내가 여자여서, 내가 아줌마여서, 내 외모가 뛰어나지 않아서, 내 성적이 우수하지 않아서, 내 실적이 목표에 미치지 못해서, 내 가방이 명품이 아니라서, 내 차가 94년형 캠리라서, 우리는 쉴 새 없이 더럽고 치사한 꼴을 당한다. 이런 것들만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쉽고 간단한 기준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럽고 치사해서…...'라고 낙담하는 순간 우리는 결심을 하고 투지를 다지기도 한다. 내가 성공하기만 해 봐라, 내가 살만 빼봐라, 내가 나이만 먹어봐라, 내가 건강해지기만 해 봐라 등등.

 

더럽고 치사했을 때처럼 열정과 투지가 끓어올랐을 때는 없다. 삶이 여유롭고 넉넉하고 꿀맛 같을 때는 꿈이나 목표에 디테일이 떨어지고 액션, 실행이 잘 따르지 않는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럽고 치사한 순간이 잦아지면 우리는 결의를 다지고 꿈을 꾸고 액션을 취한다. 나의 경우는 늘 그랬다.

 

오늘도 나는 더럽고 치사한 순간순간을 받아치고 꿀꺽 삼켜내며 하루를 버텨 낼 것이다. 그것은 나를 쓰러뜨리기는 커녕 오히려 나를 가장 힘차게 이끌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드럽고 치사해서…..." 힘을 낼 것이고 꿈을 꿀 것이고 액션을 취할 것이다. 나의 선택이 늘 꽃 길만은 아니었지만 아직은 도전하는 게 맞다. 부딪히는 게 맞다. 뜨거운 게 맞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브라보 마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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