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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봄
04/20/20  

봄이 왔다. 4월 중순이니까 분명히 봄이다. 그러나 시기상 계절은 봄인데 기분은 아직도 한겨울이다. 기분만 그런 것은 아니다. 예년 이맘때와 비교 해봐도 확실히 아직 봄이 멀리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봄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타운뉴스 주차장에도 봄은 아직 멀었다. 워낙 계절에 대해 무감각한지라 그러려니 했는데 우연히 과거에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확실히 예년 이맘때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진은 2015년 4월 13일 타운뉴스 주차장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사진 속에서 자카란다 세 그루는 보라색 꽃으로 활짝 뒤덮여 있었다. 하지만 올해 같은 날에는 꽃이 핀 자카란다는 한 그루도 없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가만히 생각해보니 올해는 주차장 서쪽 담장 아래에 있는 개나리도 활짝 피지 않았다. 봄의 전령이라고 할 수 있는 개나리가 여느 해처럼 담장을 노랗게 물들일 양 흐드러지게 피지 않고 겨우 몇몇 송이만 피어난 후 바로 초록의 잎으로 옷을 갈아입고 개나리란 생색만 낸 것이다.

 

봄을 알리는 노란색하면 제주도의 유채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올해 제주도의 유채는 애물단지가 되었다는 소식이다. 제주도 서귀포시 일대에는 매년 이맘때면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유채꽃축제가 열리곤 했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축제를 취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채꽃을 보기 위해 상춘객이 몰리자 당국은 결국 유채꽃밭을 갈아엎기에 이르렀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겠지만 봄을 맞아 들뜬 사람들의 마음마저 갈아엎어진 것 같아 씁쓸함이 밀려온다.

 

한국 최대 규모의 벚꽃축제인 진해군항제도 같은 이유로 취소됐다. 벚나무는 유채와 달리 갈아엎을 수 없는지라 당국은 봉사자와 경찰관 등을 배치해 사람들의 축제장 진입을 통제할 수밖에 없었다니, Stay-at-Home 명령으로 봄볕조차 마음대로 즐길 수 없는 미국도, 봄꽃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기를 쓰고 막아내는 한국도 올해는 봄이 사라진 셈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에서는 지난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선거. 하지만 2020년 국민들이 힘을 모아 피워낸 꽃은 그리 향기롭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모양새이다. 완전한 두 개의 집단으로 나뉘어 대결 양상으로 치달으며 서로를 공격하고 헐뜯던 선거판을 보면서 참담한 심정이 들었던 것은 비단 고국을 떠나 이민 생활을 하는 우리들뿐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국내에서 직접 그 현장을 보고 듣고 있는 국민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움을 겪었을 것이다. 같은 무리들 내에서도 개개인 또는 집단의 이익을 위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서로 헐뜯고 할퀴고 물어뜯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갈아엎어진 국민들은 분명 진정한 민주주의에 대한 물음을 갖지 않았을 리가 없다.

 

여러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결국 선거는 끝나고 승자와 패자가 가려졌다. 그러나 승자라고 해서 마냥 기뻐해서는 곤란하다. 선거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안겨준 상처들을 어떻게 치유하고 봉합하여 나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중차대한 과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치유를 외면하면 선거의 승자도 패자도 결국은 모두 패자의 올가미를 쓸 수밖에 없다. 4월이 왔다고 봄이 온 것이 아니듯이 상대를 제압하고 당선된 것으로만 승자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진정한 승리자는 오늘 이겼는가, 졌는가로 판가름 할 수 없다. 이제 국민들에게 남겨준 상처를 치유하고 갈라졌던 양쪽의 마음들을 만져주며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로 인해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에는 영원히 봄이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열어 둔 사무실 창문 밖 새의 노랫소리가 유난히 청명하게 들린다. 도로를 오가는 차량의 숫자가 확연하게 줄어든 까닭이다. 창틀을 넘어 들어온 바람은 4월 중순임에도 여전히 차갑다. 본래 봄바람에는 훈훈함이 깃들어 있는데 아직도 차게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봄이 멀었다는 증거다. 그동안 계속 비가 내리다 그치다 하면서 하늘은 우중충한 잿빛이었다. 모처럼 환한 날이다. 화창한 봄날이 계속 이어져 자카란다 활짝 핀 그날이 어서 오기를 바란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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