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1.5세 아줌마
홈으로 나는야 1.5세 아줌마
인준 문방구
04/27/20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작은 공간에 보물들이 가득하다. 어느 한 곳 빈 공간이 없는 디스플레이, 벽면을 가득 메운 수많은 제품들…... 이곳은 나의 천국이다. 인준 문방구는 90년대 어린 나의 단골집이었다. 문방구가 그곳뿐인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나는 그곳을 참새 방앗간 드나들 듯이 자주 찾았다. 돈이 생기면 어김없이 찾아 쇼핑하던 곳으로 종이인형, 메모지 편지지 등을 구경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나는 학교 후문 쪽에 살았고 후문에만 문방구가 서너 곳쯤 있었다. 특히 우리 아파트 상가에 새로 생긴 문방구는 뭔가 환하고 깨끗한 인테리어에 백화점에서 팔 법한 덩치 큰 장난감들도 진열되어 있어 눈이 휘둥그레지기 충분했다. 그러나 왠지 주인아저씨의 눈총과 쌔~한 분위기를 떨쳐버릴 순 없었다. 나도 몇 번 이용을 했지만 다시 발길이 가는 곳은 인준 문방구뿐이었다.

 

학교 앞 문방구는 늘 아이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보통 등교 시간 전 그날 준비물을 사기 위해 모인 꼬마 손님들, 그리고 방과 후에는 뽑기를 하거나 오락을 하는 남자아이들이 언제나 삼삼오오 모여있는 곳이었다.  문방구 운영이 뭔가 빠르고 체계적이긴 했지만 여유로운 쇼핑을 하기에는 불편한 곳이었다. 특별히 문방구 주인이 뭐라고 핀잔을 주었던 것 같지는 않지만 그냥 분위기가 그랬다. 오래 머물며 이것저것 둘러보고 만져보고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랄까…... 그렇다 보니 나는 정말 깜빡하고 준비물을 미리 준비하지 못한 날만 학교 앞 문방구를 이용했다.

 

늘 발 길이 닿는 곳은 인준 문방구였다. 그냥 동네 문방구의 요소를 잘 갖춘 집이랄까…...  주인아줌마는 마치 문방구 주인의 운명으로 태어난 듯 그냥 딱 문방구에 잘 어울리는 인상이다. 작은 가게라도 제품군이 다양하니 꼼꼼하고 부지런한 성격이셨을 테고 상대하기 번거로운 꼬마 손님들을 대상으로 하니 인내심이 꽤 좋으실 게다. 그리고 주인아줌마의 제품 안목 또한 꽤 좋으 셨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정말 어린 여자아이가 좋아할 만한 아이템이 늘 즐비했다.적당히 귀엽고 적당히 서정적인 디자인의 편지지들이 가득했고 정기적으로 신상품이 끊임없이 입고 되었다. 단골이 다시 찾아와도 사고 싶은 물건이 끊임없이 업데이트 되는 가게였다.

 

그런데 그렇게 나에게 놀이터이자 힐링 장소였던 인준 문방구는 놀랍게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건재하다. 얼마 전에 그곳을 지날 일이 있어서 불쑥 들어가 주인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저 30년 전 여기 단골이었는데…..." 하며 인사를 건네었더니

"어머 그래서 그런가 얼굴이 낯이 익어요." 하시며 내가 민망하지 않도록 나의 인사를 받아주셨다.  살짝 나이가 드시긴 했지만 얼굴이 그대로이시다. 30년 세월이 무색하게 너무 달라지지 않으셔서 처음에는 혹시 딸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가게를 둘러보니 변한 것이 별로 없다. 여전히 빼곡하게 보물들이 가득했다. 향기도 느낌도 그대로였다. 오랫동안 한곳에서 같은 사업을 유지하신 아주머니가 새삼 대단했는데 아예 그 건물을 사셔서 이제 건물주라고 하시니 더 존경스러웠다.

 

가게 안쪽으로 30년 전처럼 꼬마 아이가 앉아 있는데 손자라고 하셨다. 어느새 가슴이 뭉글뭉글해졌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아파트 상가에 있던 문방구도, 학교 앞 문방구도 모두 사라졌지만 인준 문방구는 30년 넘게 한곳에서 자리를 지키고있다. 그리고 그 비결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