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그렇고 그런 아침
05/04/20  

월요일 아침, 유난히 몸이 찌뿌둥하고 피곤하다. 어젯밤 잠을 잘 못 잔 것인지 그냥 어쩔 수 없는 직장인의 월요병 같은 것인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억지로 몸을 일으켜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빠직! 오늘 비가 오려나?  머리가 도무지 정리 불가능할 정도로 부시시하고 메이크업도 유난히 잘 스며들지 않는다. 아무리 정성껏 스펀지를 두들겨봐도 피부와 화장이 따로 노는 듯하다. 그냥 포기하자. 어차피 코로나19 이후로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은 가리고 다니니 차라리 오늘 같은 날은 잘됐다 싶다. 오늘 재택 근무한다는 남편은 아직도 일어날 생각이 없는지 여전히 침대와 한몸이 되어 있다.

 


준비를 마치고 부엌으로 가서 아침 식사 준비를 한다. 월요일 아침이고하니 조금 더 신경 써줘야지 싶어서 스크램블 에그에 미트볼도 굽고 매쉬포테이토도 끓여본다. 스크래치부터 만드는 건 아니고 이미 조리되어 나온 간편식을 데워주는 식이지만 그래도 씨리얼보다는 낫겠지 싶었다. 아이들이 하나둘 일어나 식탁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빠직! 하나도 즐겁지 않은 얼굴로 억지로 꾸역꾸역 입에 쑤셔 넣고들 있다. 그마저도 내가 식탁에 지키고 앉아 있으니 먹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이지 잠깐이라도 자리를 비우면 서로 싸우고 놀리고 난리도 아니다. 그래, 차라리 이 꼴을 안 보고 말지 싶어서 일찍 나갈 채비를 했다. 방에 들어가 가방을 챙기고 있는데 둘째가 다급하게 뛰어들어왔다. "엄마, 도준이 오줌 쌌어!"



도준이는 우리 집 막내다. 화장실로 향하던 길에 그만 사고를 친 모양이다. 내가 성큼성큼 화장실 쪽으로 다가가자 몹시 긴장한 얼굴로 내 눈치만 슬금슬금 보고 있다. 빠직! 일찍 가긴커녕 평소보다도 늦게 생겼다. 얼른 옷을 벗기고 샤워기로 아이 몸을 씻기고 졸지에 뜻하지 않은 화장실 바닥 청소까지 하게 되었다. 소변 묻은 옷을 그냥 둘 수 없어서 다른 세탁물까지 챙겨 세탁기를 돌렸다. 맞벌이를 하고 남편이 집에 있어도 늘 아이들 챙기는 것은 나만의 몫이니 세상 불공평하다 싶어 눈물이 찔끔났다.



‘그래, 살다보면 이런 날도 있지, 이제라도 얼른 나가자’ 스스로를 다독이고 감정을 추스려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거울 속에 내 얼굴은 이미 오후 5시쯤 된 듯 지쳐보였다. 지하 2층 주차된 차로 이동하는 그 순간, 빠직! 아뿔싸! 차 문이 안 열린다. 이놈의 차키는 왜 맨날 나랑 같이 있지 않는 걸까? 미국처럼 차고가 집에 붙어있지 않은 한국식 아파트는 차키를 두고 오면 꽤나 성가시다. 다시 차키를 가지러 가는 길이 절대 짧지 않고 심지어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데 이게 꼬이기라도 하면 그 이동시간은 족히 5분 아니 10분도 더 걸린다. 오늘같은 날 참 잘도 어울리는 질척이는 실수에 스스로의 화를 넘어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른 아침이라 엘리베이터가 그대로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성급히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었고 멈춰있는 엘리베이터를 확인한 후 급한 마음에 버튼도 두 번이나 눌렀다.

 


빠직! 이런, 엘리베이터가 올라간다. 문이 열리지 않고 그냥 올라간다. 분명 버튼을 눌렀는데 간발의 차로 놓친 것이다. 화가 난다. 화가 난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시간 단축을 위한 대책을 강구한다. 재택 하는 남편에게 카톡을 날린다. 차키 좀 현관 신발장 위에 올려두라고. 신발 벗고 들어가 차키를 찾고 집어오는 시간이라도 단축할 심산이었다. 빨리 누른 버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히 올라간 엘리베이터 때문에 일 분이라도 아끼지 않으면 자칫 지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말 간절한 마음을 담아 빠르게 남편에게 카톡을 날렸건만 이놈의 무심한 카톡의 1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잠에서 깨어 잠들기 전까지 하루 종일 장갑처럼 손에 스마트폰을 끼고 사시는 분이 이럴 때는 꼭 반응이 없다. 마치 짠 듯이 말이다.

 


샤워 중이겠지. 마음을 달래 본다. 머피의 법칙도 아니고 아침부터 시작된 어깃장에 월요일 아침부터 너무하네 싶다. 정말 울고 싶어졌다. 차라리 이게 다 몰카이길. 그러나 엘리베이터 이동 중에도’ 아니 이게 현실이다. 이건 다 리얼이다’ 라고 말하듯 의기양양한 카톡의 1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삑삑삑 현관문을 열고 씩씩거리며 들어간다. 아침부터 너무하네라며  그 와중에 남편에게 분풀이라도 할 심산으로 신발을 벗으려는 순간, 이럴 수가! 츤데레(쌀쌀맞고 인정이 없어 보이나, 실제로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을 이르는 말)가 이래서 인기인 걸까? 시크함과 따뜻함의 절묘한 조합이랄까? 지워지지 않던 1과 달리 신발장 위에는 차키가 놓여 있었다. 짜증은 감동으로 분노는 여운으로 찌질함은 미안함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도 아니고 출근길  5분 동안 나는 혼자 짜증내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탄식하고 환희했다. 그런데 이런 날이 어찌 오늘 뿐이랴! 어제도 그제도 순탄하지 않았다. 애 넷 딸린 워킹맘은 얼마나 더 오늘같은 그렇고 그런 아침을 보내게 될지…… 솔직히 눈 앞이 캄캄해 온다. 그러나 확실한 건 그래도 이 맛에 사는 것 같다. 이 맛에 다시 일어나고 힘내서 출근하고 이 맛에 복닥복닥 지지고 볶으며 다시 웃는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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