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
05/11/20  

왜 사람들이 '하루를 산다'고 말하지 않고 '하루를 보낸다' 혹은 '하루를 지낸다'라고 말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산다는 것'은 내가 주체가 되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보낸다'나 '지낸다'는 하루를 마지못해 살아야 하는, 그럭저럭 보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살려지는 삶, 힘들고 어려움에서 나오는 외로움과 서글픔이 묻어난다.

 

여행을 할 때 좋은 경치를 구경하면서 즐기고 만족감을 찾는 것이 '하루를 사는 것'에 해당한다면 '보내는 것이나 지내는 것'은 마지못해 남을 따라 나선 여행에서 이리 저리 끌려 다니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그런 느낌이랄까. 특히 몇 군데 목적지를 정해 놓고 시간에 쫒기며 군부대 이동하듯이 다니는 단체 관광이 그러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다보면 이렇게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람들에 휩쓸려 갈 때가 있다. 목적이나 목표도 없이 덩달아 사는 삶. 요즈음이 그렇다. 누구라도 그 어떤 것도 제 마음대로 할 수 없지 않은가.

 

우체국에 갔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모두 마스크를 귀에 걸고 근엄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그들 모두가 일제히 나를 쏘아 보고 있었다. 아뿔싸, 마스크를 안 했다. 차에 있다. 다시 가서 갖고 올 것인가 잠시 망설였다. 우선 우체국 곳곳에 쓰여 있는 경고문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Covid-19에 대비해서 6 피트 떨어져 있으라는 문구와 노란 테이프를 붙여 놓은 곳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라고 쓰여 있었다.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는 문구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차까지 가기 싫었다. 그냥 버티기로 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은 몹시 견디기 어려웠다.

 

지난번에 은행에 갔을 때는 마스크가 없어서 산에서 사용하던 목부터 입과 코를 가릴 수 있는, 방한이나 흙먼지를 막기 위해 다목적으로 사용하는 목도리(일명: Coolnet 혹은 Buff)를 두르고 갔었다. 그 후로는 차에 마스크를 두고 다녔는데 깜빡해서 빚어진 해프닝이었다.

 

힘들고 어려울 때다. 많은 사람들이 위로의 글을 보내오고 있다. 시중에 떠도는 멋지고 좋은 글들이다. 평상시 같으면 읽으면서 충분히 위로가 되고 힘이 나는 글들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이런 글들이 넘쳐나다 보니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다. 어떤 글이나 동영상은 같은 것이 반복해서 몇 초 간격으로 여러 사람들로부터 들어오기도 한다. 심지어 동일한 내용을 같은 사람이 몇 분 간격으로 보내오기도 한다. 아마 보냈다는 사실을 잊고 또 보내는 것이리라. 보낸 것을 또 보냈다고 알려주면 그 사람이 민망해 할까봐 그냥 지나치지만 가끔 단체방에서는 올린 것을 또 올렸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어렵고 힘든 때이다. 무직자들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자영업자들은 자영업자들대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직장인들은 직장인들대로 어렵다고들 한다. 연방정부, 주정부에서 여러 가지 구원책들을 마련해서 실시하고 있지만 실제 그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각종 구비서류를 준비하는 것은 당연하고, 무엇보다도 자격여건에 해당하는가 여부를 살펴보고 시작해야 한다. 도움을 받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하고 인터넷에 들어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씨름해야 한다. 일률적으로 납세자들에게 준다는 1,200달러도 서류 미비자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이다.

 

자영업자들의 경우는 업소 렌트비와 직원 임금, 사무실 운영에 따른 각종 비용 등, 기본적인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일체의 수익이 없거나 수입이 절반 이상 뚝 떨어진 상황에서 건물주는 건물주대로 어려움을 주장하고 있다. 어떤 건물주는 테넌트에게 렌트비 협상에 대한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본래 금액에서 조금도 감액을 할 수 없으며, 납부 기일도 반드시 엄수하기 바란다는 편지를 보내고 있다.

 

견디다 못해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고국으로 돌아가 2주간의 격리 기간을 보내고 한국생활을 시작한 사람들도 적지 않은 듯하다. 남의 나라에서 고생하며 사느니 차라리 말 잘 통하고 의료보험 확실히 잘 되어 있는 고국에서 다시 생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올해 여든 다섯인 타운뉴스 애독자 한 분이 박카스를 사들고 찾아주셨다. 가끔 방문해서 격려를 아끼지 않는 분들 중의 한 분인 이 애독자는 외출을 삼가고 집안에서만 생활하다보니 눈이 더 침침해지고 건강도 좋지 않아졌다고 했다. 마켓에서 줄서서 장을 보면서 서글픔을 느꼈다고 했다. 6.25 피난 시절에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요즈음 너무 힘이 든다고 했다.

 

그렇다. 우리들 모두 힘들다. 하루 빨리 코로나19에서 벗어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