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건 사진뿐
05/11/20  

국민성인가? 문화인가? 아니면 전 세계적으로 그냥 다 그런 건가? 사람들은 사진에 목숨을 건다.

 

여기저기 직접 보고 느끼고 체험하기보다는 사진부터 찍고 보는 문화가 형성되고 사진 찍을 수 있는 장소가 각광을 받는 시대이다. 식당이나 카페도 음식맛만큼 중요한 게 사진이 잘 나오느냐 하는 것이고 여행이나 공연을 보러 가서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기보다 온통 사진 찍는데 혈안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검은 롤을 조금 당겨 나사 틀에 끼우고 볼록 올라온 필름이 다시 말려들어가지 않게 얼른 뚜껑을 닫고 낚싯대 같은 필름 감는 레버를 돌리던 기억이 남아있는 세대이다. 그 시절까지 가면 코닥이 문 닫은 지 언 10여 년이 지난 마당에 할 이야기가 너무너무 많을 것 같아 오늘은 딱 디지털카메라 이야기만 하려고 한다.

 

디지털카메라는 내가 한창 연애하고 놀러 다니던 20대 초반인 2000년도 초반부터 붐이 일었는데 당시만 해도 디지털카메라는 신기방기 그 자체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필름 없이도 사진 촬영이 가능한 디지털카메라는 사진을 찍으면 사진관에 필름을 맡긴 후 사진이 현상되길 기다리는 대신에, 사진 촬영 후 카메라 스크린을 통해 바로 사진을 보고 필요하면 삭제하거나 다시 찍을 수도 있는 등 촬영자에게 즉시성과 편의성, 경제성 등을 제공하면서 사진 촬영의 대중화를 견인했다. 대학에서 필름을 전공한 나는 새로운 사진 관련 장비가 등장하면 다른 사람보다 앞서 구입해 사용했고, 그를 통해 얻은 사진들을 차곡차곡 모았다.

 

디지털 사진에 입문한 지 3년 만에 내가 보유한 사진 수은 3만여 장에 달할 정도였다. 물론 지금은 셀 수도 없을 만큼 지도 않지만. 그러다 보니 현재 백업용으로 보유한 외장하드드라이브만 15개나 된다. 사진을 보관하기 위해 구입한 외장하드의 저장 용량도 파워집부터 메가바이트 급, 기가바이트 급을 지나 지금은 4 테라바이트까지 커졌다. 내가 가지고 있는 외장 하드만 보아도 디지털 산업의 발전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디지털 시대의 방점을 찍었던 건 뭐니뭐니해도 역시 싸이월드였다. 그 시절 우리는 싸이월드에 미니홈피를 개설해 친구들과 일촌을 맺고 사진을 찍으면 그때그때 부지런히 앨범에 올리고 누가 내 홈피에 다녀갔나 궁금해하며 습관적으로 방명록을 확인했었다. 나름 멋진 사진을 올리기 위해 공들여 연출도 하고 나의 젊음과 청춘을 허세 섞인 감성 글과 사진으로 남기는 것이 일상이었다.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고 제시카 알바가 많이 하는 틱톡과 다를 게 없었다. 프사를 위해, 틱톡을 위해 연출은 물론 장소까지 섭외하는 요즘과 정도와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추억해 보면 그 당시도 디지털 요지경 세상이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켠 랩탑에서 발견한 20년 전의 사진들. 싸이월드를 채워왔던 그 사진들을 보는 순간, 비수 같은 외 비명 한마디가 20년 전에도 나와 함께였던 짝꿍(구 남친, 현 남편)에게서 날아온다. “이게 다 싸이월드 때문이다.” 사연은 이러하다. 모든 게 싸이월드로 돌아가던 그 시절, 디지털 사진들 중에 빼어난 사진들(싸이월드 업로드용으로 고르고 또 골라서 선택된 수작들), 심지어 포토샵 같은 전문 툴로 터치업이 되었던 당시 작품 사진들은 전부 싸이월드용으로(당시 사진 용량 제한이 있었음) 사진 사이즈가 줄어들어 있었다.

 

덕분에 예쁜 사진들은 죄다 질이 안 좋은 저화질이고 마음에 안 드는 지못미 사진들은 전부 사이즈가 크게 초상화급 화질로 저장된 것이다. 게다가 예전에는 어둠에서는 사진이 잘 찍히지 않아 실내에서도 플래시를 많이 터트려 찍었으며 진보 전 기술이라 눈이 전부 레이저를 뿜는 시뻘건 레드 아이. 사진들을 후루룩 넘기면 마치 요즘 뜨는 넷플릭스 킹덤에 나오는 한국 좀비들 사진 같다. 당시에는 최고로 잘 가꾸어 재생산해 놓은 사진들이 지금은 오히려 독이 된 것이다.

 

하지만 잘 나온 사진이 아닐지라도 그 사진들을 보고 있으니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말과 젊을 때는 뭘 해도 이쁘다는 말이 내 귓가를 맴돈다. 표정이 일그러졌어도 눈이 귀신처럼 빨간 레이저를 쏟아내도 눈부시게 싱그러웠던 그 시절은 아름답기만하다. 물론 오늘의 나는 그 시절보다 덜 풋풋하지만 바야흐로 20년 후에 보면 또 그리울 그날이기에 나는 오늘도 다양한 포즈를 잡고 순간을 기록한다. 남는 게 어디 사진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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