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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영웅
05/26/20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 안토니오 파우치 소장은 코로나19가 미국 전역에서 급속히 확산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정정하거나 반박을 계속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부활절(4월 12일) 전에 해제하려고 했지만 파우치는 반대했다. 결국 대통령은 부활절 정상화 계획을 포기해야만 했다.

 

파우치 소장은 4월 12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더 일찍 조치를 취했으면 더 많은 목숨을 구했을 것이라며 이를 부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5월 12일 상원 청문회에 화상으로 출석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재개 시도에 대해 ‘경제활동을 너무 빨리 재개하면 불필요한 고통과 죽음을 초래할 뿐’이라고 경고했다.

 

파우치 소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정정하거나 반박한 것은 이뿐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3월 21일 ‘하이드록시클로로퀸(말라리아 치료제)이 코로나 사태의 게임 체인저일 수 있다’고 하자 대통령 면전에서 ‘근거가 없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얼마 후 하이드록시클로로퀸이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에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지난 4월 30일에는 대통령이 ‘바이러스가 우한연구소에서 발원했다는 증거가 있다’고 말하자 파우치 소장은 ‘바이러스가 인공적으로 또는 고의로 조작됐을 리 없다’고 반박했으며, 지난 8일 트럼프 대통령이 ‘백신 없어도 결국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라질 것’이라고 하자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우치는 1968년에 국립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에 입사해 1984년부터 36년째 소장을 맡고 있다. 미국의 코로나19 관련 최고 권위자이며 백악관 코로나 태스크 포스(TF)의 핵심 멤버로, 미국 코로나 대응의 최전선에 있다. 그는 로널드 레이건 정부 시절부터 트럼프 정부까지 무려 6명의 대통령을 보좌해 오고 있다.

 

파우치 소장은 어떻게 6명의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을 받을 수 있었을까. 미국 주간지 뉴요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완전히 비정파적이고 비이념적인 상태를 유지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으며, 자신이 ‘학자이고 의사다. 그게 전부다’라는 신념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파우치 소장은 팩트의 힘과 데이터의 효율성에 대해 믿는다. 그는 ‘증거를 기반으로 과학적 공공 보건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며 ‘많은 잡음이 있어도 이 조언이 결국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들보다 작은 키에 다소 왜소한 체구를 지녔지만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을 두고 논리적으로 말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리더십까지 겸비하고 있기에 롱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의 의중을 살펴 비위를 맞추기에 급급한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이다. 이렇게 아부와 굽실거림으로 얻은 지위를 이용해 부를 축적하는 등, 자신과 가족의 이익을 얻는데 안간힘을 쏟는 사람들로 인해 세상이 어지럽혀지고 있는 이때에 파우치 소장의 처신과 소신 있는 발언과 행동이 신선하게 비춰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우리 역사에도 이런 분이 있다. 18살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들어선 후 40년 가까이 재상의 지위에 있으며 5차례나 영의정을 지낸 이원익(1547-1634)은 소신 있게 행동하면서 반대파들로부터도 지지를 받는 리더십으로 임금을 보좌하며 국정을 돌봤다.

 

이원익은 임진왜란 이전에 형조참판, 대사헌, 호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당시에는 이조판서로 재직하면서 큰 활약을 했다. 1595년 49세에 우의정을 지냈고 광해군 시절에는 영의정 신분으로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고, 인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다시 영의정에 올랐다. 이원익은 호성공신에 녹훈되고 완평부원군에 봉해졌으나, 서울에서 벗어난 시골(금천:지금의 광명시)에 두어 칸의 오막살이 초가집 한 채가 있었을 뿐, 퇴관 뒤에는 조석거리조차 없을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았던 청백리였다.

 

이원익보다 200여 년 뒤에 태어난 다산 정약용은 이원익을 ‘40년 정승 생활을 했으나 아주 조그마한 체구에 섬약한 모습, 꾀죄죄하고 주근깨만 가득한 얼굴, 숨겨놓은 옥처럼 보이지 않게 내공을 몸속에 가득 채운 인물이었기에 어떤 반대파도 그에게는 승복하는 거대한 정치적 역량을 지녔었노라’고 묘사했다.

 

이원익은 붕당(朋黨)에서 파당(派黨)으로 나뉘어 당파싸움이 치열하던 시대에 그 어느 세력으로부터도 비난을 받지 않고 지지를 이끌어냈던 인물로 칭송을 받고 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도 당파로 나뉘어 싸움박질을 일삼는 사람들 틈에서 미국의 파우치, 조선의 이원익처럼 묵묵히 그리고 소신 있게 소임을 다하는 사람이 바로 국민들의 박수와 존경을 받아야 할 진정한 영웅이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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