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한 그루
06/08/20  

집 앞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런데 열흘 전 밑동만 남긴 채 홀연히 사라졌다.

 

오랫동안 그 나무를 봐 왔지만 아직도 이름을 알지 못한다.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꽃도 그리 예쁘지 않은데다가 한여름부터 한겨울이 될 때까지 나무에서 떨어진 꽃과 열매로 집 앞이 온통 지저분해져서 늘 눈총을 주던 터였다. 더구나 더러는 그 잔해들이 신발에 묻어 집 현관이나 자동차를 더럽힐 때도 있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또 어떨 때는 그 나무에 새가 집을 지어 새끼를 낳는 바람에 새끼 새가 자라 둥지를 떠날 때까지 나무 주위는 온통 새의 배설물로 어지러웠다. 그 나무 밑에 주차라도 한 날에는 자동차가 새의 배설물로 더럽혀지는 날이 적지 않았다. 이래저래 그 나무는 짜증스러운 존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해마다 커뮤니티 어소시에이션에서 연말에 가지치기를 해 마구잡이로 웃자라는 것을 막아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가지치기를 하지 않고 방치해 두었다. ‘조금 기다리면 어소시에이션에서 하겠지’ 하고 기다려 보았지만 수일이 지나도 그대로였다. 그래서 손수 하기로 마음먹고 톱을 사다가 한 주에 한 가지씩 잘라 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 많던 가지들은 거의 제거 되고 몸통과 몇 개의 곁가지만 남았다. 당장 보기 좋지는 않았지만 나무라는 것이 한 철만 지나면 새 가지가 나오고 잎이 돋으니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시 또 잎이 무성해지면 어떡하나 걱정이 앞섰다.

 

그렇게 몇 달 지났을 때 커뮤니티 어소시에이션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4월 17일(금) 오후 7시까지 시청 별관에서 나무를 임의로 자른 행위에 대한 공청회(public hearing)를 개최하니 참석하라는 내용이었다. 만일 참석치 않으면 커뮤니티 어소시에이션에서 벌칙을 내릴 수도 있다고 했다.

 

출석하겠다고 답장을 한 후 공청회에서 내가 왜 나무를 잘랐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자료를 모았다. 마침 내가 가지치기를 한 나무에서 잎이 나고 있어 그 모습도 사진 찍었다. 가지치기를 했어도 나무는 죽지 않고 더 예쁘게 자란다고 항변하기 위한 좋은 근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나름 철저한 준비를 마치고 공청회 날을 기다렸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공청회 하루 전날 아침 출근길에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것이다. 신호등이 바뀌어 우회전을 하는데 신호등을 보지 않고 빠른 속도로 달려오던 차가 내 차의 측면을 충돌한 큰 사고였다.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 와중에도 공청회에 참석치 못할까봐 걱정했다. 검사 결과 큰 부상은 아니라고 했지만 걷기도 불편한 정도로 온몸이 욱신거렸다. 다음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니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공청회에 참석하기 위해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시청으로 향했다. 시청 별관문은 코로나 19으로 문을 열지 않는다는 표시를 붙인 채 굳게 잠겨 있었다. 예정된 시각이 지나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회의를 연기한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없어서 조금 더 기다려보았지만 끝내 아무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몹시 언짢았다. 철저히 무시당한 기분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이런 사실을 적어 커뮤니티 어소시에이션에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리고 40여일 정도가 지난 5월 27일 아침, 집을 나서다 문제의 그 나무가 밑동만 남은 채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나무를 베어 버린 것이었다. 물론 나는 사전에도 그 이후에도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했다. 내가 임의로 가지치기를 한 것에 대해 공청회를 연다고, 참석하지 않으면 벌칙을 내릴 수도 있다고 해놓고 증거가 되는 그 나무를 잘라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경찰관의 과잉 진압으로 한 흑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가 백인이었다면 경찰관 세 명이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몸통과 목을 무릎으로 짓누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흑인이기 때문에 부당한 진압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로 인해 흑인들의 인권에 대한 이슈가 미 전역에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고 시민들의 시위가 미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재택근무로 집에 와있던 아들도 오늘 라미라다 시에서 벌어지는 시위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아들에게 아빠도 참석하고 싶지만 마감일이라 참석치 못하는 대신 내 몫까지 힘주어 외쳐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겪은 ‘나무 사건’ 같은 아주 작은 일에도 이렇게 기분이 나쁜데 하물며 태어나면서부터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받고 살았던 흑인들의 가슴은 얼마나 아플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권위 있는 집단이 개개인 구성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 구성원들에 의해 주어진 권위와 권력을 이용해 그 구성원들을 무시하고 위압적이고 권위적으로 대하는 태도에 분개한다는 점에서 플로이드 사건과 내가 겪은 나무 사건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편지를 써서 그들이 귀 기울일 때까지 목소리를 내야겠다. 왜 내게 통보도 하지 않고 공청회를 열지 않았는지, 왜 연락도 하지 않고 나무를 잘랐는지 그들의 답변을 들어야겠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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