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서울 : 함께 가는 길
04/23/18  
한국출장을 준비하며 영화 10여도를 넘나드는 추위가 계속 된다는 서울 소식을 들었다. 그 추위가 어느 정도인지를 기억하기 위해 애를 썼으나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오전 6시 30분에 도착했다. 어둠이 걷히기 전의 인천공항은 생각보다 덜 추웠다. 숙소까지 리무진을 타고 오는 동안에도 그리 춥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숙소에 짐을 풀고 나온 거리는 춥고 쌀쌀했다.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서 먹었다. 창밖을 바라보며 오고가는 사람들의 하얀 입김을 보면서 추위를 실감했다. 고국에 돌아왔다는 안도감보다는 낯선 곳에 던져졌다는 느낌이었다.
 
 
모두 바쁘게 살고 있었다. 교직에서 명예퇴직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사는 친구를 만났다. 그는 귀농생활에 만족한다고 했다. 올해 자신의 농사가 잘 지어졌다고 말하며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자기 얘기만 했다. 단 한 번도 상대방의 삶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는 것이 좀 이상했다.
 
 
다음 날 오랜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다. 거기서도 이상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서로 잘한다고 박수를 치면서도 자기 노래 부르기에 정신이 없었고, 다른 사람들의 노래에는 귀 기울이지 않았다. 자기 생각에 잠겨 있거나 다른 사람과 대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노래가 끝나면 잘했다고 소리치며 형식적으로 박수쳤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은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것은 오직 스마트폰뿐인 양 스마트폰을 통해서 세상을 구하고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정작 사람들끼리는 단절을 한 채 정신없이 살고 있었다. 지하철에서도, 사람을 기다리면서도, 버스 안에서도 만나는 사람들 모두 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제 갈 길만을 가고 있었다. 사람이 길을 건너는 데도 황급히 자동차들은 지나갔고 사람들은 차가 달려오는 데도 자기 길을 갔다.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에서도 오토바이와 사람들은 서로 앞서 가려고 애쓰고 있었다. 사람들은 오토바이 소리가 등 뒤에서 나는 데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지런히 자기 길을 재촉했다. 오토바이는 오토바이대로 좁은 틈을 비집고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사람들과 거의 닳을 정도로 가까이서 요리조리 앞으로 가고 있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물었다. 종북 콘서트 신은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또 땅콩회항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를 시작하려하면 이쪽 대답을 들으려 하지도 않고 자기 얘기를 계속했다. 마치 골목길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고려하지 않고 앞으로만 돌진하는 오토바이처럼 자기 생각을 앞세워 나갈 뿐이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인격적인 만남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저 같은 생각을 한 무리만 찾을 수밖에 없다. 자기가 속할 무리를 찾아내어 같이 분노하고 울분을 토하며 세상은 두 개의 세계 밖에 없는 줄 알고 살아가고 있었다. 온통 분노로 끓고 있었다. 사람들 모두가 한을 안고 살고 있었다. 세상은 둘로 나뉘어 있었고 두 패로 무리지어 자신들의 한과 분노를 표출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패거리끼리는 똘똘 뭉쳤고, 만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같은지 알려고 노력했다.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다고 여겨지면 무조건 공격하고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냐며 분노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의 골은 깊이 패어 있었다.
 
 
대한민국의 2014년은 세월호 참사 등 각종 사고와 사건으로 얼룩진 한 해였다. 그 와중에 드러난 관리들과 기업의 부조리와 부패, 언론의 무능력, 상식과 기준의 몰락 등은 사람들로 하여금 길을 잃게 했다. 다 같이 공조하며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지 못하는 사회 속에 사람들은 분열하고 대립하며 급기야는 개인의 살 길 찾기에만 연연하는 세태를 만들어 냈다.‘대화’나‘타협’이란 단어들은 잊혔고 배타적 감정, 상대적 박탈감만 늘어갔다. 있어야 할 것은 없고 없어야 할 것들만 가득한 세상이 사람들에게 가져다 준 것은 실망과 분노뿐이었다.
 
 
2015년의 밝은 태양은 그 어두운 좌절 속에서도 희망을 주며 떠올랐다. 다시 또 시작해야 한다. 기대가 실망을 주고 분노가 혐오를 낳아 결국 폭발했던 2014년을 교훈 삼아 새해에는 지나치게 큰 기대를 버리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자. 이웃의 고통을 이해하고 서로 배려하면서 조금씩 양보하고 서로 돕고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들 안에 잠겨있는 혼돈과 분열의 마음을 소통과 이해를 통해 한마음으로 만들어야 한다.
 
 
고국에서 새해를 맞으며 다시 한 번 길에 대해 생각한다. 함께 걸을 줄 모르고 각자 갈 길만 황급하게 걷는 사람들, 쓸쓸하고 외로운 그들의 모습을 보며 2015년에는 우리가 가는 길들이 어디에선가는 만나고 합쳐져 밝고 힘찬 미래를 향해 뻗어나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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