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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공동연락사무소
06/22/20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 김여정은 6월 13일 담화에서 한국을 향해 독설을 퍼부으면서 “멀지 않아 쓸모없는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런데 김여정의 담화는 단순한 엄포가 아니었다. 북한은 김여정의 담화 사흘 뒤인 16일, 실제로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개소 1년 9개월 만이자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다음날 벌어진 일이다.

 

2000년 6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회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열고 △통일 문제의 자주적 해결 △양측 통일방안의 공통성 인정 △이산가족 문제의 조속한 해결 △경제협력 등을 비롯한 교류 활성화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한 실무회담 개최 및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방문 등의 내용이 담긴 6.15 남북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회담 후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남한 주최 스포츠 경기 행사에 북한의 참가 등 민간 교류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남북 당국의 회담이 지속되었고, 북한은 일본, 미국과도 화해 분위기를 유지하며 국교 정상화 교섭에 나섰다. 평화가 한반도에 정착할 것이라는 믿음이 곧 통일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제 통일이 멀지 않았다고 믿었다.

 

정상회담과 햇볕정책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증진시킨 공로로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한반도에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은 2002년 연평해전을 일으키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했다.

 

제2차 정상회담은 2007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 간에 이루어졌다. 두 정상은 회담 후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으로 명명된 ‘10.4선언’을 발표했다. 주요내용은 △6.15 공동선언 구현과 종전선언 추진 △백두산 관광과 이산가족 상봉 확대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 설치 등이었다.

 

하지만 ‘10.4선언’도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2010년 북한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폭격을 감행하며 위태위태하게 유지되고 있던 평화마저 파괴하려 들었다. 결국 남과 북은 두 차례 정상회담에서 논의되고 결정된 사항들을 이루는 것은 차치하고 오히려 더 강력한 경색 국면으로 회귀하길 반복했다.

 

제3차 남북정상회담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측 지역에 있는 ‘평화의 집’에서 열렸다. 2017년 말부터 끊임없이 한반도 전쟁설이 나돌았지만 불과 두세 달 만에 한반도의 정세가 급변한 것이었다.

 

이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북측 지역에 있는 ‘판문각’에서부터 도보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의 영토로 들어왔다. 김 위원장은 군사분계선 남측 지역에서 마중 나와 있던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굳게 손을 잡았다. 두 정상은 환한 미소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고, 김 위원장의 제안에 따라 비록 10여 초에 불과할지언정 문 대통령도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지역에 머물렀다. 두 정상 간의 첫 만남을 한국을 비롯해 세계 유수 언론들은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한반도에 찾아온 봄을 예찬했다. 남북은 이날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비롯해 종전 선언, 철도와 도로 연결, 이산가족 상봉 등 평화체제 정착을 위한 기틀을 다지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앞서 열린 두 차례의 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 정착과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는 초석이 됐다기보다는 화려한 일회성 이벤트에 불과했기에 국민들은 북한의 진정성에 대해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그런 불안감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번에도 여지없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라는 화살을 남한을 향해 쏘았다. 혹시나 하며 가졌던 기대가 역시나 하면서 무너져 버린 순간이었다.

 

남북을 잇는 상시적 소통 창구이자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남북 관계는 초긴장 상태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더 큰 문제는 한반도 현안에 주변 강대국들의 간섭이 끊이지 않는 한 이런 일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 뻔하다는데 있다.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도 한국 정부가 소신을 갖고 하는 일에 미·중·일·러 등 강대국들의 콩 내놓아라 팥 내놓아라 하는 식의 간섭이 한몫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미북 정상회담 결렬이 북한을 극도로 초조하게 만들었으며 또 미국의 경제 제재로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불만을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표출한 것이다. 거기에 북한 자체적으로는 경제난에 따른 민심이반을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도 노렸을 것이다.

 

혹자는 북한에 끌려가는 정책을 펼쳐온 한국 정부가 이번 사건을 자초한 것이라며 비난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것처럼 국제적인 고립과 경제난에 허덕이는 북한의 극단적 선택은 단순히 한국 정부를 향한 분노만이 아닌 국제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머지않아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할 것이라는 예측에 힘이 실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 만큼 북한의 선택에 한국을 비롯해 미, 중, 일, 러 등 관련국들이 향후 어떤 대응에 나설지 관심이 모아지지 않을 수 없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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