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부제 먹나봐
04/23/18  
고국에 다녀왔다. 6박 7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한 달 전부터 준비하여 계획했던 서너 개의 대소사(大小事)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그 가운데 외가를 비롯해 일가친척, 친지들을 모시고 치룬 큰 행사는 고국을 떠나기 전 날 열렸다.
 
 
30여년 만에 만난 91세의 큰어머니는 첫 마디가“네가 왜 이렇게 늙었냐?”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의 필자를 기억하고 있다가 주름 가득한 얼굴을 보고 그렇게 말씀하신 줄은 알겠는데 그래도 늙었다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중절모를 쓰고 나타난 동갑짜리 사촌은 자신의 머리 벗겨진 것은 생각지 않고 필자가 많이 늙었다며 연신 혀를 찼다. 70대 중반을 넘기고 80이 가까운 주름투성이의 사촌 형수도 서방님이 이렇게 늙을 줄은 몰랐다며 붙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세월이 많이 간 줄은 알겠는데 세 사람으로부터 그런 말을 듣는 것은 유쾌하지 않았다. 아니 기분이 나빠졌다.
 
 
옛일이 떠오른다. 미국 이민 온 첫해,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이 학생들과 미국 여행 중에 가든그로브의 어느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한다고 해서 인사라도 나눌 겸 찾은 적이 있다. 반가운 마음에 무심코 고생이 많아 얼굴이 많이 피로해 보인다는 뜻으로 한 마디 했다가 큰 봉변을 당했다. 네 얼굴도 피로로 찌들어 있어 그리 편해 보이지는 않는다면서 쏘아붙이는 것이었다. 필자가 무심코 건넨 말이 그 선생님의 심사를 불편하게 했나보다. 본래 말이라는 것이 이처럼 하는 사람의 의도와 달리 듣는 사람 마음에 달려 있다.
 
 
그렇다. 세상 살면서 아무리 친하고 가까운 사이라도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언론이나 국가 혹은 소설, 잡지나 영화 등에서도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것들이 있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파리에 위치한 풍자 주간지‘샤를리 엡도’사무실에 테러범들이 침입하여 총기를 난사하고 도주했다.“예언자를 위한 복수다. 신은 위대하다.”를 외치며 편집회의 중인 기자들을 향해 10여 분간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괴한들은 편집장인 스테판 샤르보니에 등 만평가 4명을 조준 사살했다. 파리 검찰은 최소 12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부상자 10여 명 중 4명은 목숨이 위태로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슬람의 예언자이며 정신적 기둥인 모하메드를 모욕하는 만평을 게재한 것이 이 사건의 원인임을 우리는 안다. 폭력을 행사한 것이 정당화되고 미화될 수는 없지만 만평에서 모하메드를 발가벗겨 놓고 조롱하는 것을 보고 범인들이 목숨을 걸고 테러를 했다면 이는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이보다 앞서 소니사에서 만든 영화‘인터뷰’의 상영을 앞두고 북한이 해킹을 하면서 위협하여 영화 상영이 일시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일국의 지도자를 회화한 저급한 싸구려 영화라고 무시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조롱당하는 사람이나 그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분노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여겨진다.
 
 
개인끼리도 상대방이 불쾌하게 느낄 언사를 하지 않아야 하듯이 언론이든 예술이든 그 어떤 것이라도 대중을 상대로 하는 것들은 분노를 생기게 하는 발표는 조심스러워야 할 것이다. 아무리 저급한 코믹영화라지만 일국의 지도자 이름을 강아지에다 붙여 부른다거나 마약집단 섹스 장면 등은 해도 해도 너무 하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하지만, 난 당신이 그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죽을 때 까지 싸울 것이다.’라는 볼테르의 말처럼 반대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는 절대로 찬성할 수 없다. 어쩌면 폭력을 촉발하는 행동이나 언사도 폭력이다. 따라서 법을 위배하거나 사회규범에 저촉되지 않더라도 사람의 마음에 분노를 일으키는 말이나 행동도 자제함이 마땅하다.
 
 
표현을 자제하고 조심하는 것이 자칫하면 자체 검열이 되어 진정한 언론의 기능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염려가 들기는 한다. 그러나 세계적인 종교의 예언자를 조롱하는 일은 지나치다. 또, 아무리 막가는 엉망진창인 나라의 지도자라 하더라도 마구 섹스나 하고 개 이름으로 지어 불리는 모습으로 묘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늦게 나타난 사촌동생의 빈 말에 기분이 좋아지는 필자를 보면서 나이 들었음을 실감했다.
“오빠는 방부제를 먹나봐. 하나도 안 늙었어.”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