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이르다
07/06/20  

고교 선배가 식사를 함께 하자고 불렸다. 선배 두 분과 후배가 골프를 마치고 마련한 자리였다. 오랜만에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며 즐거운 표정들이다. 언제 만나도 기분이 좋아지는 선배와 후배들이 거의 서너 달 만에 만났으니 어찌 반갑지 않을쏘냐. 맛나게 식사하고 있는데 한 후배가 들어왔다. 그는 식탁에 앉으려고 하지 않았다. 선배들이 앉으라고 권해도 그는 멀찍이 떨어져서 인사드리러 왔다며 근황을 묻고는 다시 만나자고 하면서 그만 자리를 뜰 태세였다. 아니 왔으면 앉아서 식사를 하고 가야지 왜 그냥 가려고 하냐고 물으니 본인이 근무하는 회사의 한 직원이 코로나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두들 어서 가라고 했다. 후에 들으니 그 후배는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이처럼 봉쇄가 완화된 후 남가주에 코로나19 감염자가 속출하고 있다. 그동안은 시니어들이 입주해 있는 양로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감염 사례가 많았으나, 최근 확진자가 늘면서 식당, 병원, 코스트코와 푸드포레스(Food 4 Less) 등에서도 발생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LA카운티 보건국 발표에 의하면 지난 1일 현재, 굿사마리탄 병원에서만 66명의 직원이 확진 판정을 받았으며, 환자 중에서도 두 사람이 감염되었다. LA 다운타운에 있는 연방교정시설과 카운티교정시설에도 각각 90명과 89명의 직원이 감염된 상태다. 수감자들은 각각 478명과 286명에 달한다.

 

LA 다운타운 인근의 다저스 핫도그로 유명한 파머존 식품가공 공장의 경우 전체 직원 1,837명 중 8%가 넘는 153명이 감염되었고, 또 버넌에 있는 스미스필드 식품가공 공장은 183명, 캄튼에 있는 랠프스 웨어하우스의 경우 100명, 타이어 리사이클링 회사인 라킨스타이어의 경우 86명이 각각 확진 판정을 받았다.

 

LA 6가와 유니온이 만나는 곳에 있는 푸드포레스 마켓에도 8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이곳은 맥도널드, 홈디포, 스타벅스 등이 모여 있는 곳이라 이곳을 이용한 시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또 리틀도쿄 인근 월그린 약국에도 집단감염이 보고됐다.

 

이밖에 한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토런스 코스코에는 직원 5명이 감염됐으며, 잉글우드와 사우스게이트에 있는 맥도널드 매장과 LA에 있는 판다익스프레스 매장에도 감염자들이 다수 발생했다.

 

미국 밖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인도에서는 한 결혼식장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해 백 명 이상의 환자가 나왔다. 신랑은 결혼식 당일 고열을 호소하며 예식 연기를 호소했지만 가족들이 강행했고, 신랑이 숨지자 코로나19 검사 없이 화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 당국이 결혼식 하객을 대상으로 검사를 진행한 결과 신랑 친척 15명의 감염을 확인했고, 이들이 다른 하객들을 감염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추가 검사 결과 그 지역 주민 364명 가운데 86명이 추가로 확진 판정을 받았고, 현재 당국은 해당 지역에 통제령을 내리고 집중 방역 작업을 펼치고 있다.

 

지난 4월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의 클라우디아 로페스 시장이 가족 중 한 명씩만 외출이 가능한 규정을 어기고 부인과 슈퍼마켓에 간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또, 칠레에선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이 와인을 사는 모습이 논란이 됐다. 피녜라 대통령은 외출 허가증을 받았다고 해명했지만, 와인 구매는 외출이 허용되는 필수 업무가 아니라는 점에서 비판이 일었다.

 

이들과는 달리 콜롬비아의 ‘후안데아코스타’시 시장은 코로나19 격리령을 위반한 아들과 그의 친구들을 직접 경찰서로 데려간 행동으로 찬사를 받았다. 시장은 "우리 가족은 누구보다 먼저 코로나19 조치를 준수해야 한다"며 "술 몇 잔을 즐기기 위해 시민들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장의 아들 등은 규정 위반으로 사회봉사 명령 등을 받게 된다.

 

7월 1일 현재 전세계의 확진자는 1,057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51만 3천 명을 훌쩍 넘었다. 전세계가 아직도 코로나바이러스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처럼 온 세계가 난리법석을 떨고 지역 사회에서 새로운 감염자가 속출하며 사태가 심각해지자 모처럼 문을 열었던 남가주 식당들이 다시 식당 내 영업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지난 2주 사이 코로나19 확진자와 입원환자가 급증하자 개빈 뉴섬 주지사는 독립기념일 연휴를 앞두고 1일 LA와 오렌지카운티, 벤투라카운티 등 19개 카운티내 식당들에 영업 중단 명령을 내렸다.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되기도 전에 성급하게 규제를 완화한 것은 분명한 실책이었다. 선후배들과 식당에서의 만남은 당분간 어려울 듯하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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