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 가르기
04/23/18  
어머니는 사람을 가려 사귀라고 말씀하셨다. 마중지봉(麻中之蓬, 삼밭에서 자란 쑥이라는 뜻으로, 선량한 사람과 사귀면 그 영향을 받아 자연히 선량하게 된다는 뜻)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얘는 공부를 못하니까 안 되고, 쟤는 지나치게 장난이 심해서 안 된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하고는 말도 섞지 말라고도 했다. 필자는 어머니가 사귀지 말라고 하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 했다. 실제로 학교에 다니지 않는 친구들하고 구두도 닦고, 아이스케이크 장사도 하면서 중학교 1학년 시절을 보냈다. 어쩌면 필자야말로 모든 어머니들이 사귀지 말라고 하는 바로 그 아이였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동네에 멋진 옷을 입고 다니는 잘 생긴 청년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소매치기로 감옥살이를 하고 나왔다고 했다. 실제로 그가 전과자였는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다들 그런 줄 알고 그와 상종하려 하지 않았다. 모두 그를 외면했다. 어머니는 그와 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필자는 그를 형이라 부르며 자주 어울렸다. 그 형은 말도 재미있게 하고 예의도 바른 편이었다.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했다. 이 또한 마을 사람들 눈에 거슬리는 이유가 되었다. 무엇인가 자기를 감추기 위해 겉으로만 그렇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린 내가 보기에 그는 선량한 사람이었고 바르게 사는 사람이었다. 직업은 없었지만 직업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고 마을 사람들하고도 어울리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말조차 건네지 않았다. 그저 어린 동네 조무래기들이나 그와 인사를 나눌 뿐이었다. 결국 그 형은 1년 남짓 살다가 어디론가 떠나가 버렸다.
 
 
고교 동창생이 얘기하기 전에는 신은미 씨를 알지 못했다. 성품이 착하고 고운 말을 쓰던 친구가 쌍시옷을 섞어가며 말하면서 점차 격분했으며 언성도 높아졌다. 그는 여러 차례‘빨갱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온순하고 선량한 친구를 이렇게 화나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동영상 몇 편을 봤다. 북한을 방문하여 찍은 것으로 보이는 것으로 밋밋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저 평범한 북한 가정 방문과,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장면, 북한 거리, 거리를 걷는 주민들을 담은 동영상이었다.
 
 
신은미 씨가 통일 토크콘서트에서‘북한은 지상낙원’이라는 발언을 했다는 종편방송 보도를 본 수많은 사람들은 돌팔매질을 시작했다. 친구도 이런 보도 내용을 보고 그런 마음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한 고등학생은 사제폭탄을 만들어 콘서트 장에 터트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에 관한 종편방송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은미 씨는 한국정부로부터 강제 출국되었고 앞으로 5년간은 한국에 입국할 수 없다. 신 씨에게는 국가 보안법(법률 제 11042호)이 적용되었다. 과연 신 씨가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 고무 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 선동하였는지는 의문이다.
 
 
한국에서 강제 출국된 신은미 씨가 10일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신 씨를 환영하기 위해 나온 지인들과 진보단체 회원 20여 명이 보수단체 회원 20여 명과 욕설을 하며 엉겨 몸싸움을 빚었다. 신 씨가 차에 타기 전까지 서로 상대를 향해 욕설을 퍼붓고 밀고 당기며 충돌했다. 경찰이 출동하여 일부 인사들을 체포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고국을 떠나 먼 이국땅에서 힘을 합쳐 살지는 못할망정 왜 패를 가르고 서로 으르렁대며 싸움질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 사람의 진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려하지 않고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고 사람을 이렇게 호도해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친구를 마중 나온 사람들은 이해하겠는데, 신 씨의 행동에 분노한 사람들이 북한으로 돌아가라는 현수막을 들고 나와 고함을 지르고 소란을 떠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또 환영하는 사람들이 들고 나온 현수막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신 씨를 민족의 영웅이라고 추켜세우고 있으니 말이다. 양 극단으로 치닫고 있었다. 참 웃기는 이야기이다.
 
 
신은미 씨는 좋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바람에 잘 나가던 평화통일의 지킴이에서 종북분자로 전락한 것인가. 아니면 종편언론이 그렇게 몰아세운 것인가. 정확하게 알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 또한 패를 나누려는 시도로 보일 수 있으며 내 안에 잣대로 섣부른 판단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동네사람들에게 떠밀려 어디론가 떠나 가버린 청년처럼 신은미 씨는 고국으로부터 종북분자라는 낙인이 찍혀 쫓겨난 것은 분명하다.
 
 
어느 편에도 끼어들고 싶지는 않다. 분단된 조국을 두었다고 우리마저 분열되어 살 필요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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