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빵’을 아시나요?
07/13/20  

N빵은 몇 해 전부터 2030 세대 사이에서 확산되어 불려지기 시작한 신조어로 우리가 흔히 아는 ‘더치페이’의 또 다른 이름이다.

 

비용을 각자 부담한다는 의미의 더치페이(Dutch pay)는 더치 트리트(Dutch treat)에서 유래됐다. 더치는 '네덜란드 사람'을, 트리트는 '한턱내기' 또는 '대접'이란 뜻으로, 네덜란드의 한턱내기 관습이 더치페이의 원조인 셈이다.

 

17세기 네덜란드와 영국의 식민지 경쟁이 치열할 때 영국인들은 네덜란드인을 탓하기 시작하면서 더치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였고 네덜란드의 트리트 문화를 비하하기 위해 대접 대신 지불의 의미가 강한 ‘페이(pay)’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지불이라는 부정적 어감을 더함으로써 함께 식사를 한 뒤 자기가 먹은 음식에 대해서만 비용을 지불하는 정반대의 의미로 해석해 네덜란드인을 인색한 사람들이라 조롱한 것이다.

 

‘더치페이'라는 말은 한국에서도 그리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는 않는 것 같다. 왠지 정 없고 차갑고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같고 더 나아가 이기적으로도 보이고 짠돌이, 짠순이 같이 쪼잔한 이미지가 저절로 떠오르기도 한다. 어쩌면 나도 2030 세대가 아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만 보면 나도 지인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면 선뜻 먼저 n빵 하자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누군가 먼저 나서 주면 반가워하지만 내가 먼저 꺼내는 것은 주저하는 것 같다. 특히 내가 나이가 많거나 직책이 높거나 할 경우 자동적으로 내가 계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따지고 보면 나이가 많다고 돈이 더 많은 것도 아니고(요즘엔 ‘영앤리치’들도 적지 않지만) 그렇게 만날 때마다 매번 일방적으로 내는 것은 분명 부담스러운 일임에도 말이다.

 

일본에서 잠시 유학 생활을 했던 남편은 연구실에서 함께 공부했던 일본 친구가 갑자기 본인은 돈이 없어서 다 함께 참석하기로 한 저녁 파티에 가지 않고 집에 간다고 했을 때 적지 않게 문화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동기나 선후배들이 서로 뜯어말리며 같이 가자고 설득했을 텐데 남편 혼자만 어리둥절했었다고 한다. 더치페이 문화가 너무 당연한 일본에서는 이런 일이 흔한 일로 당연히 내가 먹은 건 내가 계산을 하고 식당에서도 그걸 당연시 생각하고 돈을 따로 받는다고 한다.

 

물론 미국도 마찬가지다. 식당에서 ‘Separate bill please’하면 알아서 가격을 나눈 빌을 가져온다. 예를 들어 10명이 각자 다른 음식과 음료를 주문하고 분할 결제를 요청할 경우 식당에서 아예 택스와 팁까지 분할 계산된 10장의 빌을 가져온다. 물론 아직도 일부 한식당 중에는 "어머 나눠서 내시게요?" 하시는 주인 아주머니도 계시지만 여하튼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더치페이를 한다고 하면 네?, 예?, 뭥미? 하는 황당한 표정은 기본이다. 당연히 한 명이 계산을 하는 문화에서 분할 결제 식당 주인도, 같이 간 친구도, 다 같이 놀라는 너무나도 소름 돋는 차가운 문화다. 마치 각자 계산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누군가 계산하는 것이 익숙했다.  물론 '오늘은 네가 샀으니 다음엔 내가 산다'는 기본적인 룰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데 언제부턴가 n빵이 자연스러워졌다. ‘n빵 할까? 얼마야?’ 장기 불황으로 젊은 2030 세대의 지갑 경제의 어려움을 모태로 서로 배려의 아이콘으로 n빵 문화가 더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배려라는 말이 처음에는 생소하긴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얻어먹는다는 생각에 먹고 싶은걸 못 먹고(사주는 사람이 짜장 시키면 나도 별 수 없이 짜장) 나중에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매번 나한테 밥 사준 선배가 몇 년 후 아쉬운 소리 하며 부탁이라도 하면 어찌 단번에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각자 먹은 것을 해결하는 n빵은 확실히 해방감을 주는 것 같다.

 

김영란법 이후로 거짓말처럼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웃돈, 촌지 문화가 사라진 것처럼 n빵 문화를 기다렸던 이들이 많았던 건 아닐까? 그래서인가 요즘 만나는 지인과 친구들도 스스럼없이 n빵을 자주 얘기한다. 이를 증명하듯 n빵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앱도 여럿 존재한다. 휴대폰 몇 번 클릭만으로 친구 앞에서 바로 돈을 계좌 이체하는 시대가 바로 이런 문화의 확장을 돕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처럼 은행에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던 시절이 아니니. 이중 한 업체가 제공한 자료 기준으로 2019년에만 앱 가입자가 650만 명이고 누적 송금액은 10조 원이 넘는다고 하니 n빵이 대세는 대세인 것 같다.

 

‘아 이번엔 내가 낸다고. 사장님 이걸로 계산하세요.’

‘아니야, 아니야, 이번엔 내가 사. 어허 왜 이래. 내가 산다니까.’

 

이런 대화가 오가며 공중에 카드가 날아다니는 모습은 중장년층의 식사 때마다 등장하는 익숙한 모습이다. 계산대에 들이민 카드 2장에 어떻게 할지 몰라 웃으며 쩔쩔매는 식당 사장님의 얼굴이 이제는 오래전 "라떼는 말이야 “속 한 장면으로 남은 시대가 된 걸까? 우리 아이들 시대는 어떨까? 부모 자식 간에 식사도 n빵 하자고 그러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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