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스나이퍼
04/23/18  
막중한 임무를 띠고 도시로 잠입하는 스나이퍼처럼 영화관에 들어갔다. 호평과 악평이 엇갈리는 가운데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영화‘아메리칸 스나이퍼’를 보기 위해서였다. 미 해군 엘리트 특수부대 네이비 실 대원으로 이라크 전쟁에 파병되어 전설적인 저격수로 이름을 남긴 크리스 카일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다.
 
 
순수한 애국심에 불타는 텍사스 출신 카우보이가 맞닥뜨린 전장은 사슴이나 노루 따위를 잡던 사냥터가 아니었다. 여자든 어린아이든 상관없이 아군을 공격하려는 자를 향해 무조건 방아쇠를 당겨 인간을 저격하는 일이 그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아군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적을 죽이는 것을 애국이라고 생각하며 저격을 계속하여 전설이 되고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적군에게는 현상금을 붙여 잡아야 하는 악명 높은‘범인’이 되어버렸다. 4번에 걸쳐 이라크 전쟁에 출정 후 제대 한 우리의 영웅은 사회복귀에 어려움을 겪는 제대군인들을 돌봐주는 일을 하며 국가에 대한 봉사를 계속 한다. 그러다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던 한 제대군인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난다. 총으로 사람 죽이는 일을 하며 영웅이 되었던 사람이 총에 맞아 죽다니 아이러니로 생각해야 할지 업보로 생각해야 할지 마음이 착잡했다.
 
 
이 영화가 흥행몰이를 계속하는 동안 프랑스에서는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이 벌어졌다. 중동 무슬림 국가에서‘아메리칸 스나이퍼’를 본다면 분통이 터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마치 컴퓨터 게임에 등장하는 평면적이고 단순화된‘적’으로 그리고 있으니 말이다.
 
 
이 영화의 감독은 극우 보수파로 알려진 클린트 이스트우드이다. 왕년의‘더티 해리’로 유명한 영화배우 출신 이스트우드 감독은 말년에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영화를 만들어내다가‘아메리칸 스나이퍼’에 이르러서는 거의 프로파간다에 가까운 작품성향을 내보였다. 소득은커녕 거대한 후유증만 남기고 끝낸 전쟁에 대한 성찰은 전혀 없고 도리어 적군과 아군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영화를 이끌어간다. 영화의 주인공 크리스 카일이라는 인물 자체도 흑백논리에 의해 애국심에 불타며 자신의 사명을 다한 사람이었다. 이런 점들을 지적하며 영화 평론가들은 막대한 흥행실적을 올리고 있는 이 영화에 대해 날카로운 비평을 쏟아내고 있다. 이라크 전쟁을 그려낸 접근 방법과, 주인공의 캐릭터를 풀어 낸 시각이 말도 안 되게 단순하고 맹목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열광하고 있다. 흥행수입이 1억 3천만 달러를 돌파하고 있다. 극장마다 사람들은 넘쳐나고, 영화가 끝나 엔딩자막이 올라갈 때 관객들은 박수를 친다. 작품성으로는 의문이 많은 영화지만, 미국인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내적인 필요에 화답하는 요소를 영화는 갖추고 있다.
 
 
2015년 시점에서 미국인들이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건재하다는 자기 확인이라고 본다. 여러 해 동안 바닥을 헤매던 경제가 회복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진단 하에 미국인들은 경제뿐만 아니라 그동안 추락했던 자존심도 회복하고 싶어 한다. 실제로 미국은 서서히 회복하고 있다. 미국 본토 내의 방대한 셸 가스 발견과 채굴 및 석유생산에 힘입은 새로운‘에너지 붐’과 함께 미국경제가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2류 국가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씻어내고 막대한 석유보유량에 힘입어 앞으로도 변함없이 슈퍼파워 패권국의 자리를 굳건히 지킬 수 있다는 예측이다. 낙관적인 미래관을 가지고 새로운 시대에 돌입하고 있는 미국의 현실에서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시기적절하게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영웅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 시대에 사람들은‘영웅’의 의미가 무엇인지 더 이상 묻지 않는다. 그저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사명을 갖고 삶에 헌신한 사람을‘영웅’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개인적인 영웅이 얼마든지 가능한 미국이란 나라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영화가 지나치게 단순하고 평면적이며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충성을 맹목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비평가들의 해석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국적인 정의, 그것을 지키기 위한 평범한 국민들의 애국심, 그 둘의 조합으로 유지되는 미국의 위대함, 그런 것을 갈망할 뿐이다. 그런 미국인들의 내적 필요를 정확하게 조준하고 있는 영화가 바로‘아메리칸 스나이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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