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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
07/27/20  

KBS에서 매주 토요일 오전에 방영하는 황금연못이라는 TV 쇼가 있다. KBS에서는 이 쇼를 ‘역경의 세월을 살아온 대한민국 시니어들의 다양한 인생과 그 속에 녹아있는 삶의 지혜를 젊은 세대와 함께 나누며 진솔하고 유쾌한 삶의 이야기를 소통하는 신개념 토크쇼’라고 소개하고 있다.

 

우연히 이 쇼를 보게 되었다. 나이 든 어른들과 일부 젊은이들이 함께 어떤 것에 대해 생각을 나누며 자기주장을 펼치는 쇼였다. 그날은 73세의 어머니가 아들과 혼인할 사돈 가족들과의 상견례 자리에 미니스커트에 배꼽티를 입고 가려고 해서 아들이 안 된다고 말리고, 어머니는 계속 고집을 부리는 상황을 놓고 발표자들이 각자의 생각을 피력하고 있었다. 찬성하는 쪽은 어머니의 패션이기 때문에 어머니가 좋아하는 옷을 입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었고, 반대하는 쪽은 아무리 개성 존중의 시대라지만 때와 장소를 가려서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반대 주장을 펼치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찬성의 논리를 주장하는 한 남자에게 물었다. 만일 당신 부인이 똑같은 상황에서 미니스커트에 배꼽티를 입고 간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그러자 그 사람은 반대할 것 같다고 답했다. 남들은 그럴 수도 있지만 내 가족은 안 된다는 것이니 그의 주장이 절대적인 가치나 기준에 합당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방송을 마칠 무렵에 발표자들과 그 쇼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찬성과 반대를 선택했다. 이날 찬성은 55%, 반대 45%로 어머니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가도 무방하다는 주장이 10% 정도 더 높게 나왔다.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과거에 비해 가치 기준이 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사실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특히 한국 사회의 전체적인 흐름을 살펴보면 완전히 두 편으로 나뉘어 내 편이 하는 일이면 무조건 옳고 반대편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아니라는 식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짙다. 그냥 자기 주장만 하면 괜찮을 법한데 반대하는 사람들을 모두 적으로 생각하고 무조건 공격하고 압박해서 자기주장을 관철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다.

 

최근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관 인사청문회와 대정부 질의응답 과정을 보면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야당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무조건 싸울 듯이 달려드는 장관들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그 장관들이 문제인지, 아니면 그런 질문을 하는 국회의원들이 문제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자신이 답변하기 편한 질문만을 하라는 것 아닌가. 다소 불쾌감이 들고 못마땅한 질문이라 해도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의 질문을 받고서 어떻게 그렇게 악을 쓰면서 달려들 수 있는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앞에 언급한 TV 쇼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던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체념하고 그대로 시대적 변화에 적응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예전에 내가 배운 대로 머릿속에 습득되어져 있는 대로 살아 갈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지난주 어느 날 무겁고 부피가 큰 짐을 차에 싣기 위해 큰 벤을 빌려 타고 집으로 갔다. 마침 아들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나는 아들이 도와주러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들은 자기 차를 타고 떠나려 하고 있었다. 황급히 아들에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아들은 9시에 식당 문을 닫기 때문에 음식을 픽업하러 빨리 가야한다고 했다. 45분이나 남았으니 도와주고 가라고 했다. 마지못해 아들이 차에서 내렸다. 아들은 소리치지 말라고 하면서 불만스러운 표정과 어투로 ‘도와주면 되지 않냐?’고 했다. 난 말했다. 그냥 가라고. 그리고 그 부피가 크고 무거운 물건을 번쩍 들어 벤에 실었다. 아들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아들이 음식을 픽업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내게 음식을 먹겠냐고 물었다. 나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가 사온 음식을 먹으며 평소처럼 대화를 나눴다.

 

부자간에는 이렇게 털 수도 있겠지만 내 편 네 편으로 나뉘어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마주 보고 앉기는 곤란할 것 같다. 또, 국회의 대정부 질의과정에서, 혹은 청문회 과정에서 고성을 주고받았던 사람들끼리 어떤 표정을 지으며 서로 얼굴을 마주할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미니스커트 입고 사돈과 만나는 상견례 자리에 가겠다는 73세의 어머니, 아버지가 큰소리로 말했다며 기분 나빠하는 아들, 양편으로 나뉘어서 내 편이 옳다며 무조건 상대방을 비판하는 국민들, 국회에서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성을 지르며 자기주장만 하는 정치인들, 모두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놀랍고 당황스러운 모습이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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