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7/20  

비가 온다. 장마다.  6월 초 무렵, 올여름도 작년처럼 비가 안 와서 마른 장마가 예상된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 기사에 달린 첫 번째 덧글이 인상적이었는데 "마른 장마 같은 소리 하고 앉아있네. 비가 안 오면 그냥 장마가 아닌 거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 덧글을 보면서 한참을 웃었는데 7월 중순 지나며 장마가 시작되더니 지금 서울은 본격적인 장마 시즌이다. 이번 주 내내 그리고 다음 주도 흐린 날과 비가 계속될 예정이다.

 

어떤 사람들은 비가 오면 울적해진다는데 나는 괜히 설레고 기분이 들뜬다. 빗소리를 들으려고 일부러 창문을 열고 있기도 하고 비에 젖은 아스팔트나 흙냄새도 좋아한다. 비 특유의 비릿한 냄새와 땅에서 올라오는 흙냄새가 온 세상을 가득 채우면 도시의 답답함에서 벗어나는 느낌이고 뭔가 살아 숨 쉬는 생명력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 살기 시작한 지 3년이 되어가며 가끔은 비 때문에 불편한 일들이 생겨난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한국에 살 때 분명 비를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비가 오면 괜히 짜증부터 났다.  비 오기 전부터 온 동네에 풍기는 하수도 냄새도 역하고 비 오는 날의 축축함과 눅눅함 자체가 싫었다. 게다가 우산을 쓰고 돌아다니는 것은 곤욕 그 자체였다. 우산을 쓰는 자체도 번거롭지만 우산을 쓰고 길을 걷다가 마주오는 사람과 마주치는 것도 싫고 두세 사람이 나란히 우산을 쓰고 걸어오느라 지나갈 길을 막아버리는 건 더더욱 싫었다.

 

우산을 안 갖고 외출했는데 비가 오는 것도 난감했고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해서 완전무장하고 나왔는데 비가 안 와도 문제였다. 비바람에 우산이 뒤집히는 것도 끔찍했고 우산을 쓰고 있는데 실내에 들어갈 때 우산을 접어서 젖은 우산을 들어야 하는 것도 싫었다. 요즘에야 젖은 우산을 넣을 비닐을 제공하는 곳이 많아지긴 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들고 다니면 바닥이 미끄러워지고 순식간에 지저분해진다.

 

비 오는 날 옷이 축축해지는 것도 싫었다. 습하기 때문에 축축해지는 건 물론이고 비바람이 불면 아무리 우산을 써도 온몸으로 비를 다 맞아야 한다. 바닥에 고인 물을 피해 다녀야 하는 것도 스트레스고 신발과 양말이 젖어버리면 짜증스럽고 불쾌했다. 장화를 신으면 비가 멈췄을 때 힘들고 운동화는 비가 많이 오면 젖어버린다. 가끔 걷다가 도로를 질주하는 차나 오토바이 때문에 물 폭탄을 맞으면 하루 종일 재수 없는 기분이랄까? 비 오는 날의 대중교통은 또 어떤가? 축축한 사람들이 뒤엉켜 불쾌하고 쾨쾨하기 짝이 없다.

 

생각나는 것만 대충 적었는데도 비를 싫어할 만한 이유가 충분해 보인다. 이렇게 비를 싫어했던 내가 흐린 날이나 비를 좋아하게 된 것은 순전히 인생의 절반 이상을 캘리포니아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이상 기후가 아니고는 일 년 열두 달 비 오는 일이 거의 없다 보니 어쩌다가 비가 오면 마치 손님처럼 반가웠다. 어쩌다가 비가 와도 우산을 쓰고 걸어 다닐 일이 거의 없고 실내나 차 안에서 비를 바라만 보니 싫어할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캘리포니아에 시는 동안 비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내가 앞으로 계속 비를 좋아하게 될지 다시 싫어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하루 종일 비가 왔다. 이 비로 인해 산과 나무는 더욱 짙은 초록빛으로 물들고 선명하고 신선한 공기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시름마저 잊게 해 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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