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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04/23/18  
아버지는 젊어서부터 미국을 참 좋아했다. 그 시대를 살던 많은 아버지들, 아니 한국인들 대부분이 그랬을 것이다. 전쟁의 포화 속에 살아남은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 막강한 우방이자 세계 초강대국이었던 미국은 거대한 자유와 풍요의 땅으로 인식되었다. 어릴 때 고향을 떠나 자수성가한 아버지에게 미국은 또 하나의 도전이자 약속이었을지도 모른다. 서울에 올라와 열심히 살아가는 와중에 만났던 미국인들로부터 희망과 번영의 이미지를 읽었을 수도 있다. 그런 연유로 아버지는 막연하게 장차 미국에서 살게 될 거라고 믿고 살았던 것 같다. 덩달아 필자도 이담에 어른이 되면 미국에 살 거라고 생각하면서 컸다. 필자가 먼저 와서 아버지를 초청하는 것으로 순서는 바뀌었지만 생각이 현실화되어 우리는 미국에 살고 있다.
 
 
2년 전까지 아버지는 해마다 고국방문에 나섰다. 처음에는 선물을 잔뜩 사들고 씩씩하게 다니셨다. 노쇠하셔서 힘들어졌을 때는‘내가 이제 다녀오면 언제 또 가겠냐’면서도 두 해를 넘기지 못하고 고국을 찾았다. 고향에 다녀오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사촌형이 선산을 지키며 농사짓고 살고 있었다.
 
 
아버지의 고향은 청양군에서도 가장 산골로 치는 남양면 매곡리이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예산서 버스로 갈아타고 청양까지 가서 남양면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남양에 내린 후에는 한 시간 이상을 걸어가야 했다. 지금은 시외버스가 마을회관 앞까지 들어간다.
 
 
그곳을 2015년 새해 첫 날 필자가 방문했다. 갑자기 방문한데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막내동생이 군복무 30여년 만에 장군이 되었기에 사남매가 함께 찾아가 조상들께 인사드리기 위함이었다.
 
 
아버지는 태어나고 얼마되지 않아 할머니가 돌아가신 탓에 동네 아주머니들의 동냥젖으로 컸다고 한다. 그리고 형수의 보살핌 속에 컸으나 어려서부터 나뭇짐을 져야 했고 매일 일정한 양의 새끼를 꼬아 놓지 않으면 등교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아버지는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상경하여 갖은 고생을 겪으며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 그 후 공무원으로, 그리고 5.16쿠데타 이후에는 각종 직업을 전전하면서 살아온 삶이 아버지에게 그리 만족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쉬지 않고 고향을 찾았다. 명절은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에도 빠짐없이 고향을 찾았다. 무엇이 아버지를 고향으로 부른 것일까. 지독한 가난과 가혹한 노동, 편협과 무지만이 존재했을 고향이 그리워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태어나 자란 곳을 떠나 타지를 떠돌며 인생을 쌓아가는 동안 변치 않는 존재의 뿌리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한국으로 떠나기 전 아버지에게 함께 가겠냐고 물어보았다.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에 누워계시는 아버지는 말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버지가 가실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막상 포기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나가는 듯 했다.
 
 
오랜만에 찾은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 앞의 향나무는 별로 더 커지지 않은 채 20여 년 전과 같은 모습으로 구부정하게 서있었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가 나란히 누워 계셨고, 건너편에는 둘째 큰아버지를 모셔 놓았다. 그 아래로 필자가 미국에 사는 동안 세상을 떠난 사촌 형 둘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눈 덮인 산길은 미끄러웠고 바람은 차가웠다.
 
 
아버지 친구 분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고, 살아계신 한 분마저 의식이 뚜렷하지 않다고 해서 찾아뵙지 못했다. 사촌형 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난 사촌형 몫까지 형수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미국에 돌아와 선산에 다녀왔으며 외가, 친가 온 친척들을 모셔놓고 잔치를 치루고 왔다고 해도 아버지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저 그랬냐며 고개만 끄덕일 뿐. 아버지에게 함께 가자고 얘기했을 때 난색을 표명하던 때와 똑같은 표정으로 아들이 전해주는 고향 소식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고향을 떠나 온 사람들이 모두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떠났던, 떠날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었던, 한번 떠난 고향은 멀어지고 잊혀진다. 기억 속에서 그리움으로만 남게 된다. 고향과 현실과의 거리가 멀고 단절이 심한 이민생활 속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고향을 잊어가는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고향을 창조해내고 있다. 한국의 고향이 점점 낯선 곳, 머나 먼 기억 속의 장소와 시간으로 사라져가는 동안 이곳에서의 삶은 또 뿌리를 내리고 있으니까. 미국에 사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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