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s never die
08/03/20  

생지옥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믿는 신에게 빌었다.

제발, 제발, 제발 살려만 달라고.

십삼 년은 너무 짧은 생이었으니, 아직 못 해 본 것이 너무 많으니, 대학은 꼭 미국으로 가고 싶어 했으니, 곧 방학이라며 친구들과 놀 생각에 들떠 있었으니, 피아노 체르니 30번까지는 꼭 끝내고 싶어 했으니, 곧 태권도 시범단 옷이 나온다며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으니, 다음 주는 바닷가, 그 다음 주는 가족 여름휴가 계획이 잡혀 있으니 제발 시간을 더 달라고 신에게 간구했다. 차라리 나를 벌하라고. 제발 내 아들은 데려가지 말라고. 내가 대신 달게 받겠다고 엎드려 빌고 또 빌었으나 나의 열세 살 큰 아들은 신의 부르심을 거역하지 못한 채 나를 떠났다.

 

늘 처음이라는 수식을 달고 살던 아이였다. 우리들의 첫 아이이자 첫 아들, 첫 손주였으며, 첫 돌잔치, 첫 입학, 첫 졸업, 무엇을 하든 늘 우리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처음을 안겨 주던 자랑스러운 아들은 애통하게도 죽음마저 처음이라는 수식어로 장식해 버렸다. 나는 그 아이가 나보다 키가 클 날만을 기다렸다. 든든한 큰아들 팔짱 끼고 동네 길을 걸으면 얼마나 행복하고 자랑스러울까 상상하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겨우 한 뼘도 남지 않았는데, 올해만 넘기면 나보다 커질 것만 같았는데...... 하늘은 내가 그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일요일 오전 아빠와 자전거 타고 한강도 가고 점심엔 동생들과 게임도 실컷 하고 저녁은 아빠가 끓여준 된장찌개가 맛있다며 평소보다 밥도 빨리 먹고 디저트로 참외와 복숭아까지 챙겨 먹고 평소처럼 굿 나이트 인사를 하고 잠들었는데 월요일 아침 일어나서 내 방으로 걸어오던 아들은 그대로 쓰러진 채 의식을 잃었다. 선천적 뇌동정맥 기형으로 인한 뇌출혈이었다. 평생 남의 집 아이들 다 걸린다는 수족구, 중이염, 장염 한번 안 걸리고 어쩌다 감기나 걸리는 게 다인 건강한 아이였고 아이의 건강함은 나의 자부심이었다. 그랬던 아들은 축 늘어진 몸으로 병원에 실려갔고 4시간이 넘는 응급 수술을 실시하고 계속해서 사투를 버렸지만 끝내 의식이 돌아오지 못했다.

 

자식을 먼저 하늘로 보내고 상복을 입고 빈소를 차리고 장례미사를 하고 있자니 내 운명이 기구하고 순식간에 생을 마감한 이제 겨우 열세 살 아들이 가여워 가슴이 찢어지고 뭉그러졌다. 집에 있으면 금방이라도 아이가 방문을 열고 나올 것만 같고, 갈비탕을 먹으면 아이가 좋아하던 당면을 못 넘기겠고, 부엌에 들어가면 아이가 매일 아침 버려주던 음식물 쓰레기통에 마음이 무너진다.

 

이제 고작 열세 살, 막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어서 엄마가 쓰다듬고 입을 맞추면 싫어할까 싶어서 머리 한번, 어깨 한번 토닥이는 것도 망설이고 아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원 없이 만지고 입이라도 맞춰줄 걸...... 남은 평생 이 아이를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듣고 싶어서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가슴이 터져나갈 것만 같다.

 

아이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열어보니 "Legends never die"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마치 미리 준비해놓은 것처럼 절묘하게 잘 맞는 이 문구를 그대로 우리 아들 유골함에 새겨주었다. 유골함 대신 방 머리맡에 새겨주었다면 훨씬 더 근사 했겠지만 왠지 아이가 하늘에서 보며 좋아했을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남편과 약속했다. 우리 아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아이의 레전드를 지켜주자고. 우리 아이의 전설이 남은 가족들을 통해 빛날 수 있도록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고.

 

Legends never die.

They become a part of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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