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04/23/18  
출근길이다. 마켓 주차장에서 갈매기 수십 마리가 무언가 열심히 쪼아 먹고 있었다. 도심 한 복판에 웬 갈매기인가 살펴보러 차를 세우고 가까이 다가갔다. 빵 부스러기가 잔뜩 뿌려져 있었다. 그 빵을 먹기 위해 모여든 것이다.
 
 
빵집 주인이 팔고 남은 빵을 갈매기들의 아침식사로 제공한 귀한 뜻은 알겠는데, 이런 선심이 갈매기의 생존에 얼마나 크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렇다고 빵집 주인을 만나 주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갈매기 떼를 보니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십여 년 전에 사람들과 함께 캘리포니아 해안의 무인도, 채널 아일랜드로 탐방을 간 적이 있다. 버스 세 대가 동원되었으니까 120여 명이 참가한 봄나들이였다.
 
 
벤추라 선착장을 떠나자마자 갈매기들이 배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자신이 먹으려고 준비했던 과자나 빵 등을 던져 주기 시작했다. 하늘을 향해 던지면 갈매기들이 묘기를 부리 듯 달려들어 채가는 모습이 재미나 애 어른 할 것 없이 뱃전으로 나와 먹을 것을 던져주고 있었다.
 
 
선내 방송실로 들어가 마이크를 잡고 먹이를 주지 말라고 외쳤다.‘여러분들이 재미 삼아 하는 일이 자연 생태계를 파괴시키는 일’이라고도 했다. 호소하듯이 몇 차례 반복하자 한국인들은 모두 하던 일을 그치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외국인들도 한 사람, 두 사람 그만 두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요즈음 국민 복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당대표라는 사람이 한 강연에서 한 말이 회자되고 있다.“복지가 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지고 필연적으로 부정부패의 만연이 따라온다.”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경영자총연합회 강연에서 한 발언이다. 과연 대한민국의 복지 수준이 과잉을 우려할 정도인가?
 
 
복지국가의 최고점에 있는 나라들에서 나올 법한 얘기를 복지 초입 단계에 있는 나라에서 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대한민국의 복지 현실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나올 수 없는 말이다. 실제 복지지출이 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라는 사실은 이미 수치로 공개된 바 있다. 2014년 기준으로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중은 28개 OECD 조사 대상국 가운데 최하위였다. 복지 과잉이라는 표현자체가 적절치 않다.
 
 
4대강 사업이나 자원외교 같이 비효율적인 투자를 생산적인 복지로 돌리면 얼마든지 효율적인 복지사업을 집행할 수 있다.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에 들어간 비용은 58조 원에 이르며, 이는 초등학교 급식을 30여 년간 실시할 수 있는 금액이라는 주장도 있다. 물론 학생들 급식이 복지의 전부는 아니다.
 
 
국민 복지의 증대가 국민을 나태하게 만들고 게으르게 만든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그 얼마나 일반서민 대중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발언인가. 평생을 풍요롭게 살아온 자의 오만방자한 발언이다.
 
 
빵집 아저씨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갈매기에게 빵 부스러기를 던져주며 그들의 식생활을 해결해주었다고 생각하는 그 생각이 잘못되었을 뿐. 갈매기에게는 먹이뿐만 아니라 서식하는 터전도 중요하다. 먹이가 풍족하게 있는 생태계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갈매기가 먹이를 찾아 도심을 헤매는 갈매기보다 행복하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복지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지도 못하고 있는 시점에서 복지정책을 늘리면 국민들이 나태해질 것이라는 논리는 절실하게 서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하는 말이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복지 초기 단계에 있으면서 복지 과잉을 운운하는 것 자체도 잘못된 비유가 아닐까 싶다.
 
 
복지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 예산이 필요할 것이다. 혹자는 단순히 예산낭비나 공공기금의 낭비를 줄이는 것으로 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으나 이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증세가 필요하다면 국민적 합의를 얻어서 시행하면 된다. 근본적 세수증대 방안이 마련되지 않고서는‘저부담 저복지’의 골짜기에서 벗어날 길이 없지 않은가.
 
 
복지란 좋은 건강, 윤택한 생활, 안락한 환경들이 어우러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단순히 끼니를 해결해주거나 잘 곳을 마련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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