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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종대란
04/23/18  
인천 영종대교에서 11일 새벽에 106중 추돌사고가 일어났다. 프리웨이를 타고 다니는 일이 일상인 이곳 로스엔젤레스에서도 추돌사고가 자주 일어나지만 106중 추돌사고 같은 대형사고는 아직까지 없었다.
 
 
필자도 한국에 갈 때마다 새벽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볼일을 다 보고 밤비행기로 떠나는 탓이다. 도착해서는 꼭두새벽에 사람을 나오게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주로 공항 리무진을 타고 숙소로 향한다. 이때 영종대교를 건너야 한다.
 
 
만일 사고 당일 한국에 도착했다면 필자도 리무진 버스에 타고 있었을 것이다. 추돌 차량 106대 가운데 리무진 버스가 9대였다니 말이다. 차들이 이리저리 뒤엉켜 1.3 킬로미터나 이어졌다고 한다. 사진과 영상으로 당시의 상황을 보니 처참한 모습이었다. 사고 차량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망 2명, 63명 중경상이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하겠다.
 
 
사고의 원인으로 10미터에 불과한 가시거리를 들고 있으나 이는 사고 요소의 하나이지 원인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다. 안개 낀 것을 감안해서 속도를 평소보다 많이 낮추었다면 그렇게 많은 차들이 추돌하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도 몇 차례 안개 낀 날이 있었다. 그러나 안개가 끼었다고 서행하지는 않는다. 무조건 빨리 가기 위해 앞으로만 돌진할 뿐이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리무진 버스 안에서 운전기사가 조심하기를 바라면서 좌석벨트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좌석을 꽉 붙들고 있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었다. 대부분의 자동차들이 앞에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전혀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운전하면서도 과속하기 때문에 106중 추돌사고가 발생할 위험요인은 항상 잠재해 있었던 것이다.
 
 
운전자들의 안전불감증뿐만 아니라 영종대교를 운영하는 업체의 관리 부실도 한몫 했다는 지적이 있다. 영종대교는 바다 위에 건설된 교량이다 보니 안개가 자주 낀다. 그러나 운영업체인 신공항하이웨이는 영종대교에 단 한 개의 안내 전광판도 설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영종대교에서는 2001년에도 안개 때문에 12중 추돌사고가 발생했고, 이날 연쇄추돌 사고가 나기 전에 이미 5중 추돌사고가 발생했는데도 별다른 대응조치가 없었다. 다리 양옆에 계측시설인 기상정보시스템을 설치해놓고‘가변정보 표지판’에 정보를 올리는 게 전부였다고 한다.‘안개가 끼면 50퍼센트 감속 운행하라’는 문구만 달랑 띄웠으나 이는 안개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운영업체의 관리가 소홀했다 하더라도 사고의 원인과 책임을 그들에게만 뒤집어씌울 수는 없다. 일단 운전석에 앉으면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운전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전광판이 없고 교통정보가 부족하다 해도 안개가 끼어 10미터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이면 당연히 헤드라이트를 켜고 최대한 주행속도를 낮추어야 한다. 거북이 속도로 진행하면 어떤가. 교통이 좀 막히면 어떤가. 급하게 달리다가 106중 추돌사고에 휩쓸리는 것보다 기어서라도 바다 위에 떠 있는 다리를 온전히 건너는 것이 현명하다.
 
 
추돌사고의 최초 목격자는‘10미터 앞이 안 보이는 안개 속에서 저 버스가 뭘 믿고 과속으로 추월하는가’라고 걱정했다고 한다. 필자도 과속으로 영종대교를 관통하는 리무진 버스 안에서 마음을 졸이던 경험이 있기에 이번 사고가 남의 일 같지 않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앞으로만 돌진하려는 운전자들의 근본 자세가 어디서 연유하는지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세계 15위권의 경제대국, 소득 3만 달러 선진국으로 진입하느라 숨 가쁘게 달려온 후유증인가, 아니면 치열한 경쟁 속에서는 매사에 남보다 빨리 치고 나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처절한 생존의식인가. 좀 늦게 가더라도 다 같이 안전하게 갈 수는 없는 것일까?
 
 
한국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 혀를 찰 일이 아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조급하고 참을성 없는 한국인의 성격은 미국 이민생활 속에서도 자주 나타난다. 그 급한 성격 때문에 경제적 안정을 빨리 이루고 터전을 잡아 빨리 적응해 나가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불쑥 나타나는 급행의식은 이민생활의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인격을 깎아내리는 상황을 빚기도 한다. 크게는 탈세나 한탕주의 범법 행위부터 자잘하게는 매사에 기다리지 못하는 습관까지 미국에서도 빨리 치고 나가려는 성격은 여전하다. 자칫하면 수습하기 어려운 일에 휘말릴 수도 있다.
 
 
영종대교 106중 추돌사고는 안개 때문에 발생한 자연재해라기보다 안전불감증과 급행의식이 초래한 인재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연일 보도되는 사고 소식에 울적하지만 한편으로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 모두에게 경고등을 켜주는 사고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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