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물난리 기억
08/17/20  

"거기 물난리 난 동네?"

내가 사는 송파구 풍납동은 서울의 대표적인 상습 물난리 지역으로 손꼽히던 곳이다. 1984년과 1990년 폭우 때 풍납동 일대는 완전히 물에 잠기며 뉴스에 연일 보도되는 바람에 한때 정말 풍납동을 설명하려면 일단 물난리 꼬리표를 꼭 붙여야만 했다.

 

1980년대에 풍납동 일대는 비만 많이 왔다 하면 한강물이 역류해 엄청난 비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지대가 낮은 탓에 빗물이 몰리는 데다 한강물까지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겪었던 1990년 홍수를 마지막으로 풍납동은 적극적으로 배수 설비를 요구해 대규모 배수로를 만들고 빗물 펌프를 신설하면서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져도 끄떡없게 되었다. 그리고 비로소 물에 잠기는 동네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얼마 전 이웃들과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그 옛날 물난리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중 반은 풍납동 물난리를 경험한 주민이고 절반은 아니었다. 풍납동 토박이들이 그때 홍수 당시 지하는 무조건 다 잠기고 건물 1층은 간판 바로 밑까지 물이 차올라 고무보트를 타거나 거의 헤엄치듯 걸어 다녔어야만 했다고 침 튀기며 그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경험을 못 해본 사람들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에이~~~ 설마~~~"하며 코웃음을 쳤다.

 

그랬나? 내 기억이 왜곡되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검색을 해보았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자료가 많이 남아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사진 몇 장이 눈에 띄었다. 지붕 위로 올라선 사람들, 보트를 타고 노를 젓는 사람들, 가슴까지 차오른 흙탕물 속에 간신히 밧줄을 잡고 이동하는 사람들의 사진이 생생히 그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는 잦아들었지만 올여름 지겹도록 내린 비는 2020년 또다시 대한민국을 물바다로 만들었다. 물 폭탄처럼 퍼붓는 비를 보며 놀랍다 못해 무서웠다. 서울의 두 동맥인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는 통제되어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러야 했고 한강공원은 물에 잠겨 운동 기구며 나무의 밑동이 보이지 않았다.

 

뉴스 속에 나온 침수 지역 현장은 참담했다. 골목골목마다 어느 집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가구며 가전제품들이 나뒹굴고 있었고 흙물과 기름, 쓰레기 등이 범벅이 되어 있었다. 화면 속 모습과 30년 전 내 기억 속 모습이 매우 흡사했다. 세월이 흐르고 많은 것이 변했지만 달라진 건 아니구나, 자연재해가 선을 넘으면 재앙과 다를 것이 없구나 싶었다 

 

이제야 호우 끝에 폭염이 시작될 모양인지 집 앞에 매미들은 정신 사납게 울어대고 이틀 전부터 마치 스팀 사우나를 방불케 하는 습도 90프로 푹푹 찌는 날이 시작되었다. 올여름은 평년보다 덥지 않고 비까지 많이 와서 여름 의류나 여름용품 장사가 너무 안 되어 울상이었다던데 이제야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모양이다.  코로나19에 집중호우와 태풍까지 이만하여 충분히 몰아쳤으니 부디 폭염만큼은 적당히 넘어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제나 인간을 놀라게 하는 경이롭고 위대한 자연에게 부디 사정 좀 봐달라고 진지하게 부탁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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