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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인생
04/23/18  
지난 1월 27일, 오렌지카운티 슈퍼바이저 보궐선거에 선거 요원으로 자원봉사를 했다. 그날 선거 본부에서 한인 봉사자를 한 분 만났는데, 65세에 은퇴하고 2년 쉬다가 다시 직장 생활을 하는 분이었다.“평생 일을 하다가 은퇴하니 처음에는 참 좋았어요. 그런데 하루 이틀 쉬는 게 아니고 매일 노니까 오히려 힘이 많이 들더라고요. 아내하고 매일 다투는 것도 고역이었고요.”견디다 못한 그는 코스트코, 홈디포, 타겟, 월마트 등에 입사지원서를 냈다. 운 좋게 월마트에 채용이 되어 이제 일한 지 8개월가량 되었다고 그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일터가 있는 LA 북쪽의 작은 도시에 아예 방을 하나 얻어 주중에는 그 곳에 머무르며 일한다. 주말에 오렌지카운티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와 다툴 일도 없어지고 오히려 더 평화롭게 지내게 되었다. 평생 일한 탓에 연금도 나오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라 계속 일을 할 수 있으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했다. 60대 말에 취직이라니 한국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한국의 은퇴한 60대는 일자리는커녕 소일거리도 없다. 주로 등산을 하거나 지하철을 타고 여기저기 다니며 시간을 때운다. 65세가 넘으면 지하철 탑승이 무료라 교통비가 들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서, 혹은 친구들과 함께 지하철을 타고 멀리 나가 점심 한 그릇 사먹고 돌아오면 그럭저럭 하루해가 저문다. 이렇게 무료로 지하철 타고 다니는 노인들을‘지공대사’라고 부른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것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2015년 현재 수도권 전철은 동쪽으로는 용문, 서쪽으로는 인천, 남쪽으로는 온양, 북쪽으로는 소요산까지 갈 수 있다. 내년에는 용문에서 원주까지, 2018년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는 원주에서 강릉까지 확대할 예정이라고 하니 지공대사들의 활동 무대는 더욱 넓어질 전망이다.
 
 
건강한 지공대사들 가운데 일부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물건을 배달하는 일을 하는데 수입이 많은 사람은 한 달에 200만 원가량 번다고 한다. 그러나 지원자는 많고 일자리가 많지 않으니 택배 일 잡는 것도 하늘에 별 따기다. 초등학교 입학해서 대학 입학할 때까지 입시 경쟁에 시달리고 졸업 후에는 취업난에 허덕이고 직장 생활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하고, 은퇴 후, 일자리 찾는 것까지 경쟁해야 하니 인생살이가 고달프다. 한국에 살든, 미국에 살든 사람 사는 모양새는 다 거기서 거기다. 멋지게 잘 나가며 살았든, 후줄근하고 고달프게 살았든, 나이 먹으면 허물어지는 육체와 함께 노후가 찾아온다. 행여나 준비 없이 맞이하는 노후는 힘들고 서러워진다.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고 하면 모두 돈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먹고 살만큼은 있어야겠지만 이 또한 저마다 기준이 다르니 은퇴 전과 비슷한 생활수준을 유지할 정도라 해두자. 다행히 노후 대책이 충분히 잘 되어 있다 해도 건강이 무너지면 또 큰일이다. 노후를 대비한다고 젊었을 때 건강을 돌보지 않고 맹렬하게 일하다가 먹고살 만해지면 병들어 고생하는 일이 허다하다. 경제적으로 안정을 이루어도 건강을 잃는다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경제적 기반도 있고 건강도 양호하게 관리했다고 하자. 그런데 노후에 할 일이 없으면 그것도 문제다. 옛날에는 예순만 되어도 노인 취급을 받았는데 요즈음은 일흔 먹은 사람도 노인이라 하지 않는다. 의학의 발달과 생활환경의 개선으로 평균 기대 수명은 80세, 아니 이제 100세이다. 60대에 은퇴를 한다 해도 그 후에 살아가야 할 날이 20년에서 40년이다. 지금 젊은 세대라면 30년에서 50년이 될 수도 있다. 은퇴를 하고 또 한 생(生)을 살아야 할 판이다.
 
 
진정한 노후 대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돈도 건강도, 소일거리도 아니다. 제 1의 인생을 은퇴하고 맞이해야 할 제 2의 인생에 대한 삶의 설계가 진정한 노후 대책이다. 그 설계는 빨리 할수록 좋다. 지금의 인생을 열심히 살면서 시작할 수 있다. 무언가 해 보고 싶었던 것이 있다면 미루지 말고 당장 시작하는 것도 좋다. 취미라고 해도 좋다. 취미도 오래하면 실력이 쌓이게 되고, 실력이 쌓여서 전문 기술이 되면 그것으로 제 2의 인생을 지원할 수 있는 직업이 될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니 금상첨화이다. 즐겁게 일하면 건강은 저절로 따라 올 것이다.
 
 
제 2의 인생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설계를 시작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연령이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만 30대이든, 60대이든 상관없다. 70대, 80대라 하더라도 늦지 않았다. 80이 넘었다고 포기했다가 100살까지 산다면 그 20년의 세월을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이 가고 다가오는 내일은 언제나 제 2의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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