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09/08/20  

내가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올 4월 초였다. 그녀는 맥도날드 옆 한 건물 주차장에 자리를 펴고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한밤중이었다. 랜턴을 환하게 밝혀 놓고 그 빛에 의존하여 두툼한 책을 펴놓고 열심히 읽는 모습은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불과 대여섯 걸음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쳐다보는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분명히 인기척을 느꼈을 텐데 아무도 없다는 듯 평안한 모습이었다. 혼자 커다란 공간을 다 차지한 듯 보였다. 그리스 시대의 철인(哲人)이 재현한 것이 아닌가 잠시 혼돈에 휩싸였다.

 

그 후로도 근처를 지나는 그녀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맥도날드나 세븐 일레븐 스토어 앞에 서있기도 했고, 어떤 때는 짐을 가득 실은 카트를 밀면서 지나갔다. 가끔 자전거를 끌고 가기도 했다. 자전거 타고 가는 것을 한 번도 본 일이 없었다. 그녀는 항상 자전거를 끌고 다녔다.

 

어느 날 그녀가 머물던 바로 그 건물 앞 잔디에서 전화기를 주웠다. 주인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이것저것 누르다가 전화기 속에 저장되어 있는 사진들을 볼 수 있었다. 사진은 모두 끔찍했다. 달 위에 걸터앉아 있는 뼈만 남은 사람, 어둠속에 무엇인지 형체를 구별할 수 없는 피사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한 장은 그저 NO JUSTICE, NO PEACE라는 글자를 찍은 사진이었다. 어둠 속에서 정면을 바라다보는 여인의 얼굴도 몇 장 있었다.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찍기도 했던 모양이다. 사진은 그녀의 정신세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버려진 존재라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이 세상은 정의롭지 않고 평안하지 않다고 느끼며 살고 있음이 확실했다.

 

전화기를 돌려주기 위해 이제나 저제나 그녀를 만나기를 고대했으나 자주 마주치던 그녀가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한 일주일 정도 지날 무렵, 그녀의 것으로 보이는 자전거가 주차장에 세워져 있었다. 그녀가 책을 읽고 있었던 바로 그곳이었다. 자전거를 이리 저리 살펴보니 본래의 손잡이가 훼손된 탓인지 나무로 고정되어 있었다. 자유롭게 좌우로 회전이 어려워 보였다. 왜 자전거를 이곳에 둔 것일까? 그냥 모른 척 지나쳐도 된다. 그러나 누군가가 발견한다 해도 갖고 갈 리 만무한 자전거이기에 그녀가 잘 다니는 맥도날드와 세븐 일레븐 사이 길가에 세워 두기로 했다.

 

자전거를 놓고 돌아서는데 그녀가 나타났다. 그런데 자전거를 보고도 못 본 척 지나가고 있었다. 그녀를 불러 세웠다. 익스큐즈미, 당신 전화기 잊어 버렸지요? 예, 그렇습니다. 잠깐 기다리십시오. 자동차에 갖고 다니던 그녀의 전화기를 돌려주었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그녀가 그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내가 또 물었다. 저 자전거 당신 것 아닙니까? 그녀가 말했다. 제 아들 것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녀는 돌아서는 내게 몇 번인가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났다. 선배가 라미라다에 볼일이 있어 왔는데 얼굴이나 보고 가겠다면서 맥도날드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맥도날드 주차장으로 들어서는데 그녀가 한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카트를 향해 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한 젊은이가 자전거를 타고 왔다. 아주 새 자전거였다. 젊은이는 그녀의 아들인 것처럼 보였다. 자전거에서 내리더니 엄마의 카트를 밀고 엄마는 아들의 자전거를 타고 맥도날드로 향했다. 문 입구에서 아들이 주춤 거리자 엄마는 자신의 짐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아들에게 건네주었다. 아주 깨끗하게 잘 보관되어 있었다. 아들은 손수건을 반으로 접어 삼각형으로 만들고는 코와 입을 막고 맥도날드로 들어섰고 엄마는 밖에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근래 들어 부쩍 노숙자들이 눈에 많이 띈다. LA카운티 노숙자 서비스국 발표에 의하면 지난 1월 기준 LA카운티 내 노숙인 인구는 6만 6,400명을 넘었다. 이는 1년 새 13% 급증한 것이며 6년 전보다는 5배 증가한 수치이다. 이 수치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조사된 결과여서 더욱 놀랍다. 노숙자 서비스국은 ‘1월 이후 6월까지 코로나 때문에 LA카운티에서만 6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로 인한 노숙자 수는 집계되지 않았다.’며 코로나19 사태로 노숙자 문제가 더 악화됐을 것으로 예측했다.

 

일반적으로 노숙자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거나 생활의 불편을 초래하게 하지 않았음에도 노숙자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과 우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집세가 밀리거나 융자 상환금이 체납되면 누구나 노숙자가 될 수 있지 않은가. 그들도 더불어 살아가야 할 우리의 이웃임이 분명하다.

 

오늘 아침, 세븐 일레븐에서 나오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자전거를 타려 하고 있었다. 큰소리로 반갑게 인사했다. 그녀는 들은 척 만 척했다. 한 마디 더 던졌다. ‘새 자전거 멋지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페달을 밟는 그녀를 향해 힘차게 외친다. 'Have a nice day!'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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