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어 자전거를 배우다
10/05/20  

어제 평생 처음으로 자전거를 탔다. 마흔이 넘은 나이였다. 어렸을 때 해보지 않아서 후회되는 것 중 한 가지가 자전거 타기였지만 내게는 기회가 없을 거라고 단념했었다. 한창 자전거를 배워야 할 시기에 내게는 자전거가 없었고, 그 누구도 내게 자전거를 가르쳐주겠다는 사람도 없었다. 운동신경이 좋은 오빠처럼 자기가 알아서 배워오든지, 아빠의 혹독한 트레이닝 아래 눈물을 흘리며 배웠어야 했는데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쯤 오빠가 운전하는 자전거 뒤에 탔다가 잔디밭으로 꼬꾸라진 후부터는 그나마 티끌만큼의 관심마저 사라졌다. 

 

내게 계속 자전거를 배워보라고 한 사람은 남편이었다. 남편은 바닷가나 공원, 여행지에서 자전거를 탄 커플만 보면 "네가 자전거를 탈 수 있었더라면…..." 하며 아쉬워했다. 한국에 오고 아이들이 커가며 더욱 심해졌다. 아이들이 모두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면 가족 다 함께 자전거를 타면 얼마나 좋겠냐고 했다. 앞장서는 아빠 뒤로 엄마 그리고 줄줄이 열심히 따르는 아이들…... 물론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하지만 겁이 났다. '어릴 때도 안 탄 걸 이제 와서 뭘…... 나이 들어 자전거 타다가 뼈라도 부러지면 어쩔 거야' 싶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몸으로 하는 것은 뭐든 조심스러워서 도전을 두려워하였고 그 덕분에 크게 다치거나 부러지는 일 없이 살았다. 앞으로도 몸을 다치는 일은 분명 피하고 싶은 일임은 변함이 없다. 

 

그렇게 지난 40년간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갑자기 자전거를 타보면 어떨까 싶어진 건 아들 때문이었다. 갑작스레 하늘로 먼저 떠난 열세 살 아들이 자전거 타는 것을 매우 좋아했기 때문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쯤 되었을 때 남편은 동네 대형 자전거 전문점에 가서 그 당시 우리 형편에는 꽤 무리가 되는 금액의 새 자전거를 사 왔다. 나는 아빠가 자상하게 자전거 뒤를 잡고 달리다가 아이가 두발자전거 타기에 성공하고 그 뒤에서 엄마가 손뼉을 치며 환호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상상했다. 하지만 남편은 좀처럼 자전거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정말 1년에 한두 번 자전거를 타보자고 나갔을 때는 페달을 밟으라고 호통 치는 통에 아이는 이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고 페달을 밟는 다리에는 점점 더 힘이 빠졌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자전거 안장을 잡아주고 싶었지만 나는 자전거도 못 타는 엄마였다. 그리고 한동안 아들에게도 자전거를 탈 기회가 없었다.

 

그런 아들이 스스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것은 6학년이 다 되어서였다. 아빠가 안장을 잡아주지 않았지만 신기하고 대견하게도 아들은 결국 혼자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혼자 곧잘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자 남편은 종종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주로 동네 마트에서 얼음이나 음료수를 사 오는 심부름이었는데 가끔 10분 거리 본가에 우편물을 전달하거나 시어머님이 만들어주신 반찬을 픽업해오는 일도 있었다. 몹시 귀찮을 것 같은데도 아들은 단 한 번도 싫어하는 내색이 없었고 가끔은 신이 나서 나가는 눈치였다. 어느 날 아들이 "엄마, 저녁 바람을 쐬며 자전거를 타면 너무 기분이 좋아."라고 했는데 나는 그 기분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아들이 좋아하던 것을 내가 직접 해보고 싶어 졌다. 

 

그러나 정작 이런 나를 자전거에 앉힌 사람은 나의 자전거 선생님이었다. 가르쳐주겠다는 제안을 겁이 난다며 수차례 고사했지만 결국 나는 자전거 안장 위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페달에 발을 올렸을 땐 이미 믿을 사람이라곤 자전거 뒤를 붙들고 있는 이 사람밖에 없었다. 그저 뒤에서 자전거 안장을 잡고 있었을 뿐인데 꽤나 안심이 되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 두발자전거를 가게 하느냐에만 온 신경이 곤두섰다. 선생님이 든든하게 뒤에서 밀어주고 잡아주었지만 손을 놓으면 이내 중심이 흐트러져 자전거는 한쪽으로 치우치고 그러면 두려움을 이기지 못 하고 내 발은 어김없이 페달을 떠나 바닥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지시를 따를수록 1미터, 5미터, 10미터 점점 페달을 밟고 달릴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났고 방향도 조금씩 바꿀 수 있었다. 그리고 겁 많고 운동신경 둔한 40대 아줌마였던 나는 30여 분 만에 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에서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사람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내게 자전거를 배워보라고 권했던 남편, 동기를 안겨준 아들 그리고 나를 결국 자전거에 앉혀놓은 선생님께 감사를 전한다. 아직도 자전거 타다가 넘어져 까진 무릎이 쓰리고 아픈 완전 초보 자전거 라이더지만 감히 자전거 타기가 우리네 인생사와 닮아 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해 본다.  일단 페달을 밟지 않으면 시작조차 할 수 없는 것부터 비슷하다. 앞으로 달려 나가든, 쓰러지든 일단은 페달을 밟아야만 한다. 그리고는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중심을 잃으면 결국 얼마 못 가 넘어지니 중심만 잡으면 거의 절반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 다음은 방향을 바꾸는 것과 알맞게 멈추는 법인데 그건 아직 마스터하지 못했으니 성공 후 다음 칼럼에서 다시 이야기해보겠다.  

 

마흔 넘는 중년의 어른이 되었지만 자전거도, 인생도 바람을 가르며 자유롭게 달리기까지 아직도 숱한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넘어지고 부딪히고, 찢어지고 다치는 것이 두렵다고 페달을 밟지 않으면 자전거도 나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깨달으며 있는 힘껏 중년 아줌마의 열정을 다해 페달을 내디뎌본다. 그리고 꿈꾼다. 가족 다 함께 줄줄이 자전거 라이딩에 성공할 그날을......

나보다 먼저 자전거의 참 맛을 느꼈던 큰 아들이 하늘에서 그 누구보다 기뻐하며 빙그레 웃어주겠지!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