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내일
04/23/18  
싱가포르의 국부로 추앙받는 리콴유가 세상을 떠났다. 리콴유는 청렴과 공사 구분이 철저한 높은 도덕성을 바탕으로 밀림뿐인 작은 섬나라를 세계 8위의 경제 대국으로 만들었다. 싱가포르는 외국 기업들의 법인세가 매우 낮고 양도소득세는 아예 없다. 좋은 기업 환경 때문에 300개의 다국적 기업 본사가 상주하고 있다. 1인당 GDP가 4백 달러에 불과하던 빈국을 5만 6천 달러의 부국으로 만들었다.
 
 
리콴유는 공무원들에게 높은 도덕성을 주문하는 대신 봉급을 민간 기업 평균임금의 115%로 정했다. 초급 공무원 연봉이 10만 달러 수준이다. 거기에 보너스까지 있다. 싱가포르 공무원들은 매년 개인 재산을 증명해야 한다. 증명 못하는 재산은 모두 국가가 몰수하고 해당 공무원은 형사처벌받는다. 처벌받은 공무원은 사기업에 취업하지 못하도록 제도적으로 봉쇄해 놓았다. 싱가포르에서 공무원의 부정부패는 곧 자멸이다. 싱가포르는 부패 인식 지수에서 항상 9.5 이상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청렴한 국가 1위, 세계에서는 5위를 유지하고 있다.
 
 
리콴유는 1959년 총리가 되어 1990년까지 31년 동안 집권하면서 무자비한 철권통치로 공산주의자들과 마약 사범을 몰아내었다. 싱가포르에서 살인범이나 마약범은 무조건 사형이다. 또, 성폭행이나 패륜을 저지르면‘곤장’을 쳐서 불구자로 만들어버린다. 늙은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 자식은 형사처벌을 받는다.
 
 
리콴유는 아들 리센륭에게 정권을 물려줬다. 그리고 본인은 정치고문(上王)으로 영원한 권력을 소유했다. 아내와 며느리까지 정부 요직에 앉혔다. 싱가포르에서는 정치적인 표현이나 집회가 모두 금지된다. 이를 어기면 형사 처벌받는다. 방송국과 신문사 모두 공기업이다. 싱가포르 여당은 56년째 정권을 잡고 있다. 87석의 국회 의석 중, 84석이 여당이다. 야당 의원에게는 발언권이 전혀 없다. 야당표가 많이 나온 지역구는 예산 삭감을 실시한다. 야당 총수나 야당 의원들은 거의 신용불량자들이다. 여당에서 소송을 걸어 모두 그렇게 만들었다. 강력한 경찰력과 헌법으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통제한다. 싱가포르에서 회사 노조 설립은 불법이다. 만일 이를 결성하면 형사처벌한다. SNS 검열은 합법이다. 따라서 트위터, 페이스북, 이메일 등에서 정부 비방 글을 쓴 사람은 무조건 처벌한다.
 
 
리콴유는‘아시아인들에게 서양식 민주주의는 사치다아시아인들에겐 독재가 더 적합하다’고 말했다. 독재를 실시했지만 국가의 부를 축적했고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깨끗한 나라,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었다고 사람들은 그를 칭송한다. 그러나 리콴유는 엄연한 독재자이다. 싱가포르는 그와 그의 아들이 집권해온 지난 50년 동안 4만 명을 사형시킨 나라다. 인구 대비 세계 1위의 사형 국가이다. 국민행복도 조사에서 149개국 중에서 149위 꼴찌를 한 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칭송하는 까닭은 개발 부분에 높은 점수를 주기 때문이리라.
 
 
젊은이들은‘리콴유식 국가 발전 모델’에 저항한다. 그들은 사회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싱가포르 모델은 단일 정당에 의한 독재적인 정부 운영 방식과 자유방임 경제 정책을 혼합한 것이다. 이 모델은 그동안 성공적으로 작동해 왔지만, 질서와 번영의 대가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해 왔다. 젊은이들은 사회 정치 경제 이슈 전반에 걸쳐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길 원한다.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다원주의의 부족으로 이미 싱가포르 모델에는 균열이 생기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반대자들을 파산으로 몰아넣거나 사법부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고액의 벌금을 부과하는 등의 방법으로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아 왔다.
 
 
싱가포르의 젊은이들은‘사람들은 정부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고, 정부도 신뢰 회복에 관심이 없다. 우리는 위기에 처해 있다’고 외치고 있다. 그 결과 인민행동당도 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리 전 총리의 아들이자 현 총리인 리센륭을 포함한 후계자 중 어느 누구도 리 전 총리만큼의 명성과 권한을 얻지 못했다. 여기에 정부에 순응적인 언론 대신, 인터넷이 다양한 의견을 증폭시키는 통로로 활용되면서 집권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001년 이후 인민행동당의 의석 점유율은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당장 인민행동당의 독점 체제가 바뀌지 않을지는 몰라도 변화에 대한 기대는 커져 가고 있다.
 
 
싱가포르 전반에 걸친 개혁 요구를 정부 혼자 감당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민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사회계약 단계로 가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갑작스러운 독재자의 죽음 이후에 민주화로 가는 과정에서 엄청난 대가를 치렀던 것처럼 싱가포르의 민주화도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리콴유의 개발독재에 대한 평가는 역사가들의 몫으로 남았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