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10/12/20  

초등학교 시절, 주일마다 어머니는 4남매를 데리고 성당에 갔다. 예닐곱 정거장이나 되는 먼길이다 보니 버스를 타고 다녔다. 가끔 집안일이 생기면 필자가 동생들을 데리고 가야 했다. 이때, 네 명의 버스비와 연보(捐補) 돈을 합하면 평소에 만질 수 없는 돈이 생겼다. 우리는 성당으로 가지 않고 집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만홧가게로 갔다.

 

미사 참례를 하고 주일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시간만큼 계산해서 태연하게 “성당에 다녀왔습니다”하고 집에 들어간다. 그러면 어머니는 어떻게 아셨는지 왜 성당에 빠졌느냐고 심하게 매 세례를 퍼부으셨다. 첫 범행에 혼나고도 서너 차례 더 혼났던 기억이 난다. 성당에 빠질 때마다 어머니는 용케 알아내고 벌을 주셨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주일을 지키는 것은 물론 평일에도 일을 만들어 성당에 가서 살았다. 오히려 성당에 가기 위해서 거짓말을 많이 했다. 작은 건물을 허물고 새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온 신자들이 힘을 모을 때 중등부 학생회도 힘을 보태기 위해 방학 동안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폐휴지, 빈병, 깡통들을 수집하러 다녔다. 생애를 통틀어 보건대 중·고등학교 시절에 신앙심이 가장 뜨거워지는 것은 아닐까. 성당에 가지 않고 다녀왔다고 하는 거짓말이나 성당에 가기 위해 하는 거짓말이나 모두 거짓말임에 틀림없다.

 

여러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하는 거짓말은 어떤 경우에는 상황을 무마시키거나 호전시키기도 하므로 ‘하얀 거짓말’이라고도 한다. 의심을 피하고자 사실의 일부만을 말하고 결정적인 사실은 은폐시키는 것으로 곤란한 추궁을 모면하기 위해 하는 거짓말도 있다. 이쯤 되면 사실과 거짓의 경계가 흐려지기 때문에 거짓말하는 당사자도 혼란을 느낄 수 있다. 거짓말에 대한 양심의 판단도 느슨해진다.

 

범죄심리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폴 에크만 박사는 ‘사람들은 평균 약 8분에 1번, 하루에 200번 정도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폴 에크만 박사가 말한 거짓말은 ‘요즘 어때요?’하는 물음에 ‘괜찮아요’라고 대답하는 식의 의례적인 겉치레 인사부터 자신의 속내를 보이지 않기 위해 위장한 표정이나 태도 등을 모두 포함한 것이다.

 

가깝지 않은 사람이 지나가는 인사로 잘 있냐고 묻는데 잘 있다고 대답하면 그만이지 나 지금 어떤 일로 속이 타고 마음이 아프다고 얘기할 필요도 없거니와 상대가 건성으로 ‘잘 있다’고 대답한다고 왜 거짓말 하냐고 따질 이유도 없다. 이런 거짓말은 어찌 보면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없다.

 

말로 상대를 속여 이득을 얻거나 개인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법이나 규칙을 위반하고 이를 감추기 위해 하는 말들은 분명히 거짓말이다. 또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감추기 위해 늘어놓는 변명이나 자기가 한 짓을 하지 않았다고 얘기한다면 이 또한 거짓말임에 틀림없다. 이런 거짓말은 하는 이유는 자기가 저지른 잘못이 부끄러워서일 수도 있고, 처벌받는 것이 두렵기 때문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체면을 지키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람들로부터 호의적인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거짓말을 하는 경우 동정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선의의 거짓말의 경우 전화위복의 결과를 가져올 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거짓말은 자신이나 타인을 불행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더 많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권에는 거짓말이 난무해 왔다. 2020년 한국 정가에서는 유난히 자녀들 관련 ‘거짓말’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부 장관들이 자녀들을 위해 위법 행위를 해서 이득을 얻었느냐 아니냐를 따지다 보니 거짓말이다 아니다로 공방이 계속되면서 또 다른 거짓말들이 양산되고 있다.

 

본래 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입에 발린 소리도 해야 하고 자기가 한 일도 안 한 것처럼 해야 할 때도 있고, 하지 않은 일도 자기가 한 것처럼 얘기할 경우도 있다. 더구나 가족의 비리와 관련된, 특히나 그것이 자식과 관련된 것이라면 거짓말도 불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공정과 공평 등의 문제로 곤경에 빠지게 된다. 처음부터 사실대로 얘기를 했으면 되는데 이렇게 저렇게 모면하기 위해 그때그때 변명을 하고 둘러대다 보니, 이후 드러난 증거들에 또 다른 거짓말로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 문제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가 집에 들어오는 자식들을 보면서 성당에 다녀왔는지 여부를 아셨던 것처럼 국민들도 어떤 일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잘 알고 있다.

 

에브러함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어떤 사람들을 계속해서 속일 수 있다. 또 모든 사람들을 잠시 동안 속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을 계속해서 속일 수는 없을 것이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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