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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드는 밤
10/12/20  

그런 밤이 있다. 모든 것이 불편해 도저히 잠들 수 없는 그런 밤. 수많은 상념들이 끊임없이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지만 정작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는 괴로운 밤. 아무리 뒤척이고 또 뒤척여도 편안한 자세를 찾을 수 없고 온몸은 철인 삼종 경기라도 하고 온 듯 천근만근 무거운데 난데없이 머리부터 발가락까지 온몸이 가려워 견딜 수 없는 미치겠는 밤...... 그래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 있다. 

 

내가 운영하는 온라인 스토어에 가장 주문이 몰리는 시간은 신기하게도 밤 시간이다. 그리고 밤 사이에 들어온 주문의 70% 이상은 수면을 돕는 제품과 소화를 돕는 건강 보조 식품들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주문이 많이 들어온 것을 보면 반갑기도 하지만 '오늘도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많았구나. 밤새 소화가 안 되어 잠 못 이루는구나.' 싶어서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잠 못 드는 괴로움이 어떤 것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20대까지는 늦게까지 깨어 있거나 밤을 꼬박 새도 그 다음 날 심하게 피곤한 줄도 몰랐고 잠에 대해서 별다른 고민도 스트레스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처음 잠이 부족해서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아마도 출산 후 육아가 시작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자다가도 수십 번씩 아이 때문에 잠에서 벌떡 일어나기를 매일 반복하다 보면 거의 고문을 당하는 수준으로 피폐해지고 가끔은 거의 좀비처럼 움직이는 내 모습에 깜짝 놀라게 된다. 그렇게 네 번의 임신과 출산이 이어졌을 때 정말 못 자는 게 힘들어서 더 이상 애를 못 갖겠다고 두손을 들었을 정도로 수면 부족은 괴로웠고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 불면증이니 수면 장애니 하는 것은 정말 배 부른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종일 육아에 시달려보라지…... 밤 중 수유를 해 보라지…... 몸이 고단한데 어떻게 잠이 안 와? 쏟아지는 잠을 참아내는 것보다 더한 고통과 희생은 없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어느덧 아이들이 혼자 스스로 잠을 자게 되고 내게 자유로운 밤이 찾아오자 나에게도 때때로 잠 못 드는 밤이 찾아왔다. 나는 보통 일찍 잠이 드는 편이지만 종종 잠에서 너무 빨리 깨버리는 날이 있다. 아예 잠이 오지 않는 밤도 괴롭지만 눈 붙인 지 얼마 되지 않아 별안간에 눈이 떠져서 다시 잠들지 못하는 것도 괴롭기 짝이 없다. 다시 잠들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정신은 더욱 말짱해지고 생각과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상념의 숲을 헤매다가 결국 길을 잃고 만다. 젠장, 오늘도 날 샜군. 

 

몇 년 전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신청은 되었지만 공개되지 못한 사연들만 모아 방영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어느 할아버지가 참 인상적이었다. 이 할아버지는 수년간 잠을 한숨도 자지 않았다며 신청을 한 모양이었다. 간단히 인터뷰를 하고 할아버지에게 동의를 구하고 할아버지 침실에 관찰 카메라를 설치했다. 그리고 밤새 할아버지를 지켜봤는데 이럴 수가! 할아버지는 분명 자고 있었다. 두 눈은 감겨 있었고 푹 잠든 듯 쌕쌕거렸고 한참을 그렇게 수면 중 호흡이 유지되었다. 다음날 담당 PD가 할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전했고 할아버지는 당혹감을 드러내며 그럴 리가 없다고 말했다. 아마도 잠시 눈만 감았을 거라고 자신하며 PD가 내민 녹화된 영상을 확인했다. 그런데 영상 속 본인은 영락없이 자고 있었고 그래서 이 사연은 "세상에 이런 일이"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할아버지가 방송국에 고의적으로 거짓을 말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본인은 전혀 잠을 못 잤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본인이 곤히 자는 영상을 보고 자신도 적지 않게 놀랐을 게 분명하다. 이 할아버지처럼 자신의 수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고 싶다면 휴대폰이나 태블릿 수면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보길 추천한다. 나도 몇 달간 이용했었는데 생각보다 신기한 사실들을 많이 알아낼 수 있었다. 자주 깨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던가 깨는 이유가 있다던가, 매일 못 잤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꽤 많이 자고 있었다는 사실 등등. 수년간 단 한숨도 자지 않았다고 제보했던 할아버지도 실제로 본인이 잠든 모습을 확인한 후 더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극심한 불면증, 수면장애로 나는 잠을 못 잔다'라는 생각이 오히려 나를 불면의 늪에 빠지게 하는 것은 아닐까? 

 

사람의 몸은 분명 그렇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아마도 잠을 억지로 참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얼마나 예외가 존재하는지 모르지만 고단하고 피곤하면 결국엔 잘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오죽하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눈꺼풀이라고 했을까? 하루 이틀 덜 자는 날도 있고, 잠을 설치는 날도 있지만 그 이튿날은 분명 더 잘 자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니 잠에 있어서 조금은 자유로워지면 어떨까? 잠이 스트레스가 되고 스트레스가 외롭고 고독한 불면의 악순환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두면 어떨까 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잠 못 이루고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아이유의 "밤 편지"로 인사를 대신한다.

 

이 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띄울 게요

음 좋은 꿈이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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