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1.5세 아줌마
홈으로 나는야 1.5세 아줌마
남자들은 왜 자연인이 되고 싶은가?
10/26/20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는 치열한 도시 생활을 하다가 자연 속에서 인생 2막을 정착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2012년 첫 방영 이후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즐겨 보는 프로는 아니지만 볼 때마다 궁금했다. 왜 자연인들은 모조리 남자들인 걸까? 여자들은 자연을 싫어해서? 남자들만 자연을 사랑하는 걸까? 본능적인 걸까? DNA에 새겨진 걸까?

 

아줌마들이 로맨틱 드라마를 보면서 잠시 주인공이 되어 대리만족을 하듯, 아이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며 아이돌을 꿈꾸듯이 아저씨들은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며 자연인의 삶을 꿈꾸고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진다.

 

그래서인지 남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 년 살고 싶어. 봄이면 씨앗 뿌려 여름이면 꽃이 피네. 가을이면 풍년 되어 겨울이면 행복하네" 노래 가사처럼 살고픈 이들이 주변에 제법 많다. 누구네 아버지가 은퇴 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귀농했다더라, 고구마, 토마토, 블루베리 수확이 가능한 큰 텃밭이 있다더라 하는 이야기는 놀라울 것도 없는 흔한 레퍼토리이다.

 

그러고 보니 나의 친정아버지도 내가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쯤인가 도시에서 떨어진 한적한 땅에 집 한 채를 매입하셨다. 주말마다 가족이 함께 가서 즐기는 별장처럼 사용하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아버지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집보다 넓은 땅에는 대추나무 같은 게 잔뜩 있었는데 인생의 대부분을 도시에서 사신 나름 도시남자였던 아버지 혼자는 그 넓은 땅 관리가 역부족인 데다가 가족들도 별로 반기지 않았다. 여기서 진정한 자연인이라면 가족을 등지고서라도 자연에 남기를 선택했겠지만 아버지는 그 정도는 아니셨던 듯 얼마 안 가 그 집을 매각해버리셨다.

 

자연 속에서 아무런 구속도, 제약도 없이 그저 시간이 허락하는 만큼 하루하루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오가닉 생활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은 성별을 떠나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생활이 영구적이라고 생각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간단한 예로 나는 자연인 같은 프로는 재미도 없을뿐더러 보고 있으면 한숨부터 난다. 그분들을 깎아내리거나 비난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보고 있자면 ‘어머... 저렇게 어떻게 살아?’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정글의 법칙’이나 ‘삼시세끼’ 같은 프로그램은 재미있게 본다. 똑같이 집을 떠나 자연 속에 머무는 내용이지만 별 불편한 마음 없이 즐겁게 본다. 저렇게 지내보는 것도 참 좋겠다며 부러운 생각마저 든다. 뭐가 다른가 생각해보니 정글의 법칙이나 삼시세끼는 여행이나 캠핑같이 잠시 갔다가 돌아오는 일시적인 것이다. 분명 다시 돌아갈 날짜가 정해져 있고 진짜 내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자연인은 다르다. 그곳이 내 삶의 터전이고 나는 그곳에 계속 머무른다. 그래서 조금도 재미있지 않고 뭔가 갑갑하고 답답하다. 짱돌을 넣고 된장찌개를 끓이고 보라색 된장으로 국을 끓이고 생선 대가리를 넣고 카레를 끓이고 목욕은 언제 했는지 모를 꾀죄죄한 차림으로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반가워 해맑게 웃으며 해괴한 음식들을 들고 나오는 자연인의 모습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은 화면으로 빠져들어갈 듯 눈을 반짝이며 TV 속 자연인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는 남편이다. 그런 남편을 볼 때마다 불안감이 엄습하고 소름이 끼친다. 그러면 나는 더 크게 한숨을 내쉬며 얼른 채널을 돌린다. 10년 후 자연으로 돌아가자며 내 손을 잡아끄는 건 아니겠지? 

 

남편, 설마 아니지?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