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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뿐인 대통령 선거
11/09/20  

3일 치러진 대선에서 당선 확정에 필요한 개표가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두 후보들이 서로 승리를 선언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개표 결과에 따라 당선자의 윤곽이 들어나면 패자가 승자를 축하하며 사실상 대선 결과를 확정짓던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승리에 집착하는 두 후보들의 모습에서 예의나 체면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원칙이나 규칙 없이 무조건 상대방을 물어뜯고 제압하여 씹어 삼키려는 야수들의 모습과 다름없어 보였다.

 

전 세계의 운명이 걸렸다고 할 정도로 중차대한 미국 대선이기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음을 알면서도 이렇게 험한 꼴을 보여주고 있는지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 모두 차분하게 투표 결과를 기다렸어야 했다.

 

선거 전부터 두 후보 지지자들 간의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었고, 선거가 끝나자마자 일부 도시에서는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개표 중단을 요구하며 개표소에 난입하는가 하면, 이에 대항하여 모든 표를 집계하라는 시위가 미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이 와중에 유혈사태도 벌어졌다. 최고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선거 결과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일고 있다.

 

선거 당일 저녁 늦게 LA 다운타운에 사는 친구가 자기 집에서 내려다 본 다운타운의 현재 모습이라며 사진 몇 장과 동영상을 보내왔다. 상점들과 호텔, 보석상, 은행 등 많은 건물들의 유리와 출입문은 두터운 나무판으로 막혀 있었고, 하늘에는 방송국 헬기와 경찰 헬기가 요란한 소음을 내며 거리를 향해 빛을 쏘아대고 있었다. 거리에는 경찰들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발생할지도 모를 폭력 사태를 막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보도에 의하면 로스앤젤레스 경찰국은 선거 당일인 3일 경계령을 내리고 선거일과 그 이후에 대선 후보 지지자 간 폭력 충돌과 폭탄 테러 등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 기동 훈련을 실시했다.

 

이처럼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나는 까닭은 투표 과정에 대한 불신 탓으로 보인다. 이번 대선 투표율은 약 67%로 1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지만, 정작 투표가 불공정하게 이뤄진 것 아니냐는 불신이 선거 결과에 불복하겠다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것이다.

 

선거 결과를 둘러싼 충돌이 미 전역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띠며 ‘이번 선거의 패자는 미국’이라는 자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정권 교체를 평화적으로 이뤄내기 위한 장치인 ‘선거에서 결과에 승복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만연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필요하다면 폭력도 불사하겠다는 ‘위협’으로 인해 미국 민주주의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개탄하는 자성의 소리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대선을 치른 후에는 선거 제도와 투표 방식에 대한 비판이 한동안 계속된다. 이번에도 선거 진행 방식이 주마다 다르기 때문에 불합리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 현행 제도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다. 투표는 누구나 그 결과를 쉽게 확실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결과를 납득하기 어렵거나 불확실해서는 절대 안 된다. 복잡해서는 더 더욱 안 된다. 단순해야 하며 미 전역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현행 미국 대선 투표 방법은 개선되어야 한다. 이번 선거 후에 심각하게 선거 제도와 투표 방식의 개선에 대해 국회를 중심으로 국민적 논의가 있기 바란다.

 

5일,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는 도중에 ABC, NBC, CBS 등 미국의 주요 방송사들이 중계를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대통령의 중계는 중단하지 않는다는 관례를 깨버린 것이다. CNN은 끝까지 중계하기는 했지만 끝나자마자 욕설에 가까울 정도의 신랄한 비판을 퍼부었다. 대통령이 근거 없는 사실에 입각한 허위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하여 이 지경이 되었는지 끔찍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도 언론의 행태도 비판 받아 마땅하다.

 

두 후보와 그들의 지지자들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진흙탕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떠오르는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두 번의 임기를 마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려는 워싱턴에게 온 국민이 사망할 때까지 종신 대통령직에 머물러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대통령직을 맡는다면 ‘장기집권을 위한 무서운 정치싸움’이 벌어질 것이라면서 단호히 거절했다. 아울러 그는 대통령 퇴임사에서 국민들에게 ‘정당간의 극심한 대립과 파벌싸움’에 대해 경고하면서 ‘무엇보다 미합중국 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투표 결과에 의해 당선인이 확정되면 패자가 이를 승복하고 승자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미합중국의 발전을 기원하는 -이긴 사람이나 진 사람이나 모두 승자가 되는- 멋진 쇼가 연출되기를 바란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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