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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04/23/18  
필자는 등대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 중에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강원도의 항구 도시로 배치되는 바람에 어머니는 그곳에서 첫 아이를 낳았다. 그 당시 부모님 사진을 보면‘세월무상’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갓난아이를 안고 활짝 웃고 있는 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카락은 검게 물결치고 커다란 눈동자는 기쁨에 빛나고 있다. 얌전하게 한복을 차려입은 어머니는 시선을 내리고 수줍게 미소 짓고 있다. 어머니의 그 고운 미소가 한평생 계속 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머니는 미소 대신 눈물을 많이 흘렸다. 어떤 이는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는데 어머니에게는 5월이 잔인한 달이었을 것이다. 못난 아들이 5월에 유독 사고를 많이 친 탓이다. 중학교 시절, 수업료를 들고 가출해서 부산까지 갔다가 잡혀 올라온 것도 5월이요, 싸우다가 상대 학생에게 심한 부상을 입혀 어머니가 학교에 불려간 날도 5월이었다. 더구나 그날은 어머니날이었다. 다른 어머니들은 어머니날 잔치에 참석했는데 우리 어머니는 선생님들께 아들이 한 짓을 용서해 달라며 죄인처럼 고개 숙이고 두 손 모아 빌고 있었다.
 
 
그렇게 학창 시절에 속 썩였으니까 성인이 되어서는 잘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날까지 걱정 끼치고 속을 썩였다. 어머니는 첫아이인 큰 아들을 항상 염려했다. 아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후에는 더욱 노심초사했다. 곁에 있어도 마음 놓지 못했던 아들이 바다 건너 가 버렸으니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그 와중에 건강하던 어머니가 암진단을 받았다. 어머니는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모른다. 당신 몸이 괴로워서가 아니라 미국에서 고생스럽게 살고 있는 큰아들이 잘사는 것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암세포를 떼어내는 수술을 했다. 그리고 잠시 건강을 회복해서 아들을 보러 미국에 자주 오셨다. 미국에 머무는 동안, 새벽에 출근하는 아들의 아침상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차려주었다. 국과 반찬을 정성스럽게 만들고 따뜻한 밥을 지어 주었다. 그때 그 밥을 맛있게 먹었어야 했다. 무엇이 그리 바쁘다고 아침상을 마다하고 서둘러 나갔는지.
 
 
어머니는 한동안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살았다. 그러나 모두 제거된 줄 알았던 암세포가 폐에서 발견되었다. 다시 암 치료를 시작한다는 연락을 끝으로 어머니는 미국 방문을 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동생의 연락을 받고 식구들과 한국을 찾았다. 어머니는 수척해진 상태로도 손자들에게 무엇인가 맛있는 것을 챙겨주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정신없이 정해진 기간을 보내고 떠나는 날, 어머니는 아파트 주차장까지 내려와 떠나는 아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날 환하게 웃으며 손 흔들던 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 15년이 지났다. 꽤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나고 가슴이 아픈 것은 더 잘해드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나 후회, 반성 때문만은 아니다. 필자의 자식들이 혼인을 하고 자식을 낳아 키우는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가 지나야 했던 그 순간들이 오버랩 되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연민이 밀려온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머니 살아생전 변변한 선물 한 번 제대로 한 적도 없었다. 어머니날에도 축하한다는 말 한 마디 살뜰하게 건넨 기억도 없다. 무심한 아들은 제 인생 살기에 바빠 어머니 생각은 거의 하지 않고 살았다.
 
 
어머니가 돌아 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한국으로 다시 갔다. 장례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동생들과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막내 동생이 어머니 침대에서 발견한 것이라며 노트를 한 권 건네주었다. 어머니가 병상에서 쓴 글들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미국에서 고생하며 사는 큰아들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큰 아들 얘기만 적혀있는 노트를 보고 동생들이 마음 상할까봐 제대로 챙기지도 못했다.
 
 
어머니날 비가 왔다. 그 전날 밤새 내리던 비가 출근길에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왔다. 빗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가 어머니 꿈을 꾸었다. 생전 꿈을 꾸지도 않고 기억도 못하는데 꿈속의 어머니 모습은 뚜렷이 기억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실 무렵 쇠약해진 그 모습이 아니라 머리카락도 까맣고 함빡 웃던 하얀 얼굴의 젊을 때 모습이었다.
 
 
어머니! 어머니! 아무리 불러도 어머니는 웃고만 있을 뿐, 아무 말씀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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