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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 길
12/07/20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었다. 공원을 혼자 걸었다.

 

늘 혼자 걷다가 10월 말부터 화요일, 목요일, 한 주일에 두 번은 친구와 같이 걸었다. 누군가와 함께 걸으니 참 좋았다. 더군다나 2001년부터 10년 가까이 주말에 함께 산행을 하던 친구였기에 더 좋았다. 나는 가능한 한 천천히 걷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사는 것도 숨이 찬데 걸음까지 빨리 걸어야 한다는 것이 싫어서였다. 여유 있게 사방을 둘러보면서 이것저것 생각하며 걷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걸음이 느려졌다. 그러나 친구는 빨리 걸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혼자 걸을 때는 한 시간 가량 걸리는 거리를 친구랑 걷다 보면 50분 정도에 걸을 수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산에만 다니던 사이가 아니다. 둘이 도(道)를 깨치겠다며 모여서 수련을 한 기간도 제법 된다. 그렇게 가깝게 지내다보니 첫 마디를 들으면 다음에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아는 사이가 되었다.

 

오랜 기간을 혼자 걷다가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하는 친구와 걸으니 참 좋았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누며 걷다보면 금방 시간이 갈뿐더러 힘도 덜 든다. 또 공통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여러 가지 면에서 둘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어 기쁨을 얻기도 한다.

 

걸은 뒤 바로 헤어지지 않고 점심식사도 함께 했다. 두 사람 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라 식당을 선정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한 사람이 오늘 이 식당을 갈까하면 무조건 그리로 간다. 한식, 양식, 일식, 중식 가리지 않았다.

 

한 달쯤 지날 무렵 친구가 몸이 불편하다고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검사하겠다며 하루 거르자고 했고, 검사 결과는 음성으로 나왔으나 당분간 거리두기를 하자고 했다. 다시 혼자 걷게 되었다.

 

친구와 걷던 흙길로 가지 않고 반대 반향의 잔디 위를 걸었다. 부부로 보이는 한쌍이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두런두런 주고받는 그들의 대화가 들리는 듯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리로 옮겨졌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 혹시라도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염려되어 조심스럽게 그들의 등뒤로 가까이 다가갔다. 남편은 귀에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고 있었고, 부인은 고개 푹 숙이고 스마트폰 화면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다.

 

무엇인가 예상을 빗나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부부가 함께 있으면서 서로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루 종일 대화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공원에 나와서까지 각자의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볼 때는 정다운 한쌍이었는데 가까이 와서 보니 각자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문득 딸의 어릴 적이 떠올랐다. 딸아이가 아주 가깝게 지내는 친구와 제 방에서 놀고 있을 때, 무엇을 하고 노는지 궁금해서 들여다보았다. 딸은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고 있었고, 친구는 앉아서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나는 의아했다. 친구와 함께 놀면서 각자 자기 일을 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같이 한 공간에서 어울린다면 함께 얘기하거나 음식을 먹거나 무언가 공동의 일을 하든가 공통의 관심사를 함께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그냥 둘이 함께 있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더라도 결국은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각자의 길을 가더라도 기왕이면 마음 맞는 사람과 함께 걷는 것이 더 좋다. 인생에서의 동행이 필요한 것처럼.

 

공원에 함께 앉아 있던 부부도 그들이 반드시 같은 일을 함께하거나 꼭 대화를 나누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게 한 것은 나의 잠재의식이 그렇게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목요일, 아직도 친구는 연락이 없다. 바람이 제법 심하게 분다. 우리가 사는 지역 세 곳에서 산불이 나서 재가 날리고 있어 공기도 좋지 않은 편이다. 걷지 않을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러나 친구와 둘이라면 걸었을 것이다. 아무리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재가 날리더라도.

 

다시 친구와 함께 걷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고대한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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