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홈으로 발행인 칼럼
House of Cards
12/14/20  

요즈음 고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 소식을 접하면서 두 편의 미국 정치드라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NBC TV의 웨스트 윙(West Wing)은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방영되었고 시즌 7을 끝으로 종영되었다. 드라마 제목은 백악관의 서쪽 별관 ‘웨스트 윙’에서 빌려왔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는 유머러스하게 백악관 일상을 다루었으나 조지 워커 부시 행정부 시대로 들어서면서 '공화당 행정부가 아니라 민주당 행정부였다면 어땠을까?'라는 가정하에 진행되었다. 원래는 시즌 8까지 계획되어 있었으나 2006년 대통령 비서실장 리오 역의 존 스펜서가 사망하자 서둘러 종영했다.

 

드라마 내용이 매우 이상주의적이다. 대통령은 현명하며 정의롭다. 보좌진들은 전혀 사심이 없고 대통령과 국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가며 최선을 다한다. 때로는 정적들이 대통령과 보좌진을 공격하기도 하지만 그들의 참모습을 인정하고 깨끗이 물러나기도 하며, 서로 인정하고 존중한다. 모두 대의를 추구하는 라이벌일 뿐이다. 등장인물 중에 악인은 한 사람도 없다. 단지 자신의 소신에 따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그리고 똑똑한 국민들은 그들을 재선시켜 준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정치판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권모술수가 난무하고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좌충우돌하는 한국 정치판과 흡사한 드라마는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놀이용 카드를 삼각형 모양으로 세워서 탑처럼 쌓아올린 집을 가리킨다. 이렇게 카드로 만들었기 때문에 구조가 엉성하고 불안정하여 무너지기 쉽다. 이 모습을 빗대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이 위태로운 상황이나 불안정한 계획을 뜻하는 말로도 사용한다. 또 ‘House’는 하원을, ‘Cards’는 도박을 은유하기도 한다. 권력자의 파워 게임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카드로 만든 집’과 같고 조직 속 개인은 이런 상황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한 장의 카드’에 불과하다. 이 드라마는 그러한 상황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시즌 6, 총 73부로 이어지는 드라마로 정치판이 얼마나 시궁창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드라마는 에미상 9개 부문에 지명되어 그 중 3개(감독상, 촬영상, 캐스팅상)를 수상했다. 골든 글로브에 4개 부문에 지명되었으며, 로빈 라이트(클레어 언더우드 역)가 티브이 드라마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성추행 사건이 폭로되면서 주인공 케빈 스페이시는 시즌 6에서 죽은 것으로 처리되고 등장하지 않는다.

 

드라마는 프랜시스 프랭크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 분)가 자동차에 치어 고통스러워하는 개를 자기 손으로 죽이면서 ‘꼭 필요하지만 썩 달갑지 않은 일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독백으로 시작한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민주당 하원의원이자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인 주인공은 대통령의 당선을 돕고 국무장관 자리를 받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그가 하원에 남아 입법을 도왔으면 한다고 말을 바꿔버렸다. 언더우드는 분노하지만 이내 이성을 찾는다. 이후 그는 의회에서 대통령의 지지자로 행세하며 권력 쟁취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추진한다.

 

프랭크의 아내 클레어는 청정수 개발회(Clean Water Initiative, CWI)라는 NGO(비정부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이 단체를 통해 자신의 권력과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어 하는 클레어는 깨끗한 물 공급을 위해 우물 파는 사업을 진행함으로써 자신의 국제적 명성을 끌어올리려 한다. 그 과정에서 기존 직원의 반을 해고하고, 단체의 급격한 변화를 우려했던 매니저 역시 해고한다. 프랭크와 클레어는 둘 다 냉혹하고 권력을 향해 질주한다.

 

요즈음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드라마 같은 실제 상황은 한 사람을 검찰총장에 임명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자신을 임명한 집권세력이 덮고 지나가기를 원하는 사건들을 하나하나 수사하려고 움직이면서 권력의 눈 밖에 나기 시작한다. 자기들이 계획한 대로 따라 주리라 믿었던 검찰총장이 자신의 주관을 굽히지 않고 밀고 나갔다. 결국 권력이 임명한 법무장관이 물러나고 새로 임명된 법무장관과 각을 세우고 날을 세우며 치열한 싸움을 전개하고 있다. 수많은 카드 가운데 한 장에 불과한 검찰총장이 카드를 움직이려 하니 카드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거슬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괴롭기 짝이 없다. ‘내 편 아니면 모두 적이다. 내 편만이 옳고 반대편은 무조건 틀렸다.’ 같은 당내에서도 다른 의견은 용서하지 않는다. 의견이 다른 사람은 가차 없이 내쫒는다. 이런 모습이 비단 여당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야당에서도 똑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대표와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주저하지 않고 몰아내고 있으니 말이다.

 

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케빈 스페이시에게 ‘드라마 내용이 실제 워싱턴 D.C. 정치와 거의 비슷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도 여러분께 감히 말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실제 상황도 House of Cards의 내용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

 

chahn@townnewsusa.com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