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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New Year!
12/28/20  

 

기온이 낮아지고 바람까지 차다. 게다가 하늘도 어둡다. 비가 올듯 말듯 잿빛 이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설 때면 손이 시리다. 또 한해를 보내야만 하는 아쉬움이 밀려든다. 송년회다 망년회다 하며 만나서 먹고 마시는 것도 이런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한 가지 방편이다. 그러나 올해는 많이 다르다.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친지들에게 연락조차 가급적 삼가고 있다. 지난 십여 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했던 중학교 동창생들과의 송년회도 올해는 건너뛰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 사는 딸도 크리스마스가 지난 다음에나 잠깐 다녀가겠다고 했다. 게다가 주정부의 통제와 봉쇄가 강화되면서 격리와 재택생활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마음이 침잠되어가고 있던 날 아침, 대학 선배가 사무실로 전화했다. 휴대폰 전화번호를 갖고 있지 않아 사무실로 했다며 '잘 있냐?',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 속사포로 물었다. 그동안 서로 연락도 하지 않고 무심히 지낸 것이 마음에 걸려 서로 이것저것 한참 묻고 대답했다. 올해 83세라면서 선배는 친구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났고 뉴욕 사는 동기 한 명과 가끔 소식 전하며 살고 있으며, 일주일에 서너 번 후배들과 골프 치면서 소일한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20여 년 전 선배와 처음 만난 곳도 마일 스퀘어 골프코스였다. 연습공을 치고 있는데 모교 이름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분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하다가 옷에 새겨진 그 학교를 졸업했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나도 동문이라고 하자 후배를 만나 반갑다며 내일 동문 골프대회가 있는데 나오라고 했다. 그게 인연이 되어 동문회 일에 관여하게 되었고, 동문회장으로 2년을 봉사하기도 했다. 그 선배와 샌디에이고로 골프 치러 가기도 했고,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남에도 불구하고 자주 어울려 다녔다. 코로나 때문에 서로 얼굴도 마주 하지 못하고 천상 내년에나 봐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잠시 선배와의 추억에 빠져들었다.

 

다음날은 또 다른 선배가 보낸 편지가 사무실에 도착했다. 손으로 정성스럽게 쓴 편지였다. 70대 중반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필체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늘 선후배들을 살뜰하게 챙겨주시는 분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조기가 담긴 박스를 예쁜 보자기에 싸서 직접 사무실에 들려 전달해 주셨는데 올해는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까 방문하지 못하고 편지를 보냈나 보다. 따뜻한 격려와 함께 꽤 많은 금액의 체크가 들어 있었다. 필자가 타운뉴스를 시작한 이후로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후원하고 계시며 늘 열렬히 응원하시는 든든한 후원자 중 한 분이다.

 

대학 선배들의 안부 전화와 편지가 큰 위로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선배들께 안부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살고 있음에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해가 바뀌기 전에 선후배들에게 안부 전화라도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고교 선배가 전화했다. 이제 갓 칠십 줄에 접어든 선배다. 두어 달 전에 만나 점심을 함께 하면서 지나가는 말로 좋은 날 함께 골프 한 번 치자면서 헤어졌었다. 그 약속을 떠올리고 전화했다면서 다음 주 월요일이나 화요일이 어떠냐고 물었다. 골프채를 잡은 지 꽤 오래 되었고, 내가 골프장에 나가면 민폐라고 하자 뭐 그러면 어떠냐며 파란 잔디를 함께 걷는 것에 의의를 두자고 했다. 요즈음 가능하면 야외고 실내고 대인접촉을 삼가자는 분위기인데 굳이 골프를 칠 필요가 있냐고 하면서 코로나가 물러간 뒤에 좋은 날을 잡기로 했다.

 

연도가 다르고 시대가 다른 학창시절을 보냈음에도 단지 한 캠퍼스에서 생활했다는 이유만으로 선후배의 연을 맺어 먼 이국땅에서 만나 서로 정을 나누며 살고 있다.

 

작년 이맘때는 OC 사는 선배 한 분의 제의로 LA 사는 선배를 함께 찾아뵙고 식당으로 모시고 가서 식사를 했다. 두 분 다 80대 중반이다. 한 분은 왕성하게 사업하다 은퇴한 분이며 다른 한 분은 평생을 한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했으며 지금도 가끔 언론에 오르내리는 분이다. 모처럼 선후배들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서너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OC로 내려오는 차안에서 우리는 내년에도 LA선배를 함께 찾아뵙고 식사하기로 약속했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셈이 되었다. 두 선배에게 전화로 안부 인사라도 드려야겠다.

 

오늘도 여전히 흐리다. 오후 5시도 안 되었는데 벌써 하늘은 어두워지고 있다. 전형적인 캘리포니아의 겨울 저녁이다. 이제 몇 날만 보내면 2021년이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때이다. 해 놓은 것 없이 한 해를 보냈다는 우울한 마음에 좋은 사람들과 만나 정담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를 배려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SNS나 전화로 안부를 묻고 마음을 나누는 일조차 외면할 수는 없다. 그리고 지난해보다 더욱 알찬 한 해를 만들기 위한 새해 설계도 포기할 수 없다. 곡절 많았던 2020년을 즐거운 마음으로 보내고, 대망의 2021년을 맞이하여 신나게 뛰어보자. 독자 여러분 모두에게 행운이 가득한 새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Happy New Year!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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