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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 “마지막 구호는 복창하지 않습니다! 시작!”
12/28/20  

 

우리 시절 가족 외식이라 하면 꽤 큰 행사였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드문 일이어서 그때 먹은 메뉴나 느낌 등이 생생히 기억이 날 정도이다. 내가 기억나는 그날은 가족이 모두 다 함께 백화점에 가서 옷을 샀다. 보통 엄마는 오빠와 내 옷만 사는 경우가 많은데 그날은 엄마도 꽤 화려한 투피스 한 벌을 고르셨다. 그리고 이제 고학년이 된 내게도 내 취향대로 마음에 드는 옷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셨는데 그 옷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상의의 소매가 8부가 될 때까지 잘 입었던 기억이 난다. 옷 구성에 포함되어 있던 빨간 스카프는 오랫동안 소장했고 아직도 우리 아이들 목에 둘러주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그날 백화점 쇼핑을 마치고 부모님의 단골 일식집에 갔다. 단골이라고 해 봤자 외식할 때마다 그 식당밖에 안 가서 단골이라 할 뿐 1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곳이었다. 회를 못 먹는 나는 죽이나 튀김 등으로 배를 채워야 했지만 그래도 그 식당에 가면 어린 나도 괜히 기분이 좋았다. 회를 좋아하는 엄마는 모처럼 행복해 보였고 가족들이 좋아하니 아빠도 뭔가 어깨가 으쓱한 뿌듯한 표정을 짓고 계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내게 가족 외식이란 화목한 가정의 상징이었고 그래서 지금까지도 특별한 추억의 조각으로 남아있다.

 

요즘은 굳이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손쉽게 아무 때나 외식을 할 수 있다. 물론 우리 같은 일반 서민들은 돈 걱정을 아예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옛날처럼 생일이나 기념일에만 외식을 한다는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배달 음식 시스템도 너무 잘 되어 있으니 짜장면 한 그릇, 떡볶이 한 접시도 선택의 폭이 수십 곳은 될 것이다. 우리집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외식을 한다. 저렴한 김밥이나 햄버거부터 비싼 한우집까지, 한식부터 동남아 또는 프랑스식까지, 백반집에서 코스요리까지, 서울에 2018년 기준으로 식당 수만 8만 732개라고 하니 외식 천국과 다름없는 곳에서 우리들의 식당 기행은 언제나 즐겁고 새로웠다. 우리가 외식을 좋아하는 건 단순히 집에서 밥 해먹기가 귀찮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마치 여행을 하는 것처럼 그 식당만의 분위기와 향기, 식당의 손님들이 풍기는 소리와 식당이 지닌 기운을 만끽하는 것이 꽤나 즐겁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 부부에게 외식은 곧 데이트이다. 단둘이 무엇을 먹으러 간다고 하면 그게 설렁탕이든 스테이크든 언제나 특별하다. 걸어가는 길에는 연애시절처럼 두 손을 꼭 잡고 가고, 차 타고 가는 길에는 좋아하는 음악을 골라 감상하고 아이들의 방해 없이 단둘이 대화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가지며 특별한 음식까지 함께하니 금상첨화요 화룡점정이 아닐 수 없다. 돌아오는 길에는 백종원 쌤도 울고 갈 식당 논평이 오가는데 때론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때론 서비스가 너무 별로여서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참 많다. 

 

하지만 코로나19 시대를 맞이하며 당연하던 가족 외식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물론 때때로 햄버거나 짜장면을 배달해 먹기는 하지만. 솔직히 배달에 특화된 짜장면도 식당에서 먹어야 더 맛나고 햄버거도 "19번 고객님"하고 부르면 달려가 "케첩 한 개 더 주세요." 하며 먹는 햄버거가 더 맛나다. 음식이 따뜻할 때 먹어야 함은 모든 이들이 공감하는 음식의 디테일이 아닐까? 요식업이 식당을 위주로 발달되었다 보니 여전히 배달에 특화되지 않은 메뉴도 많고 그런 메뉴는 배달을 해서 먹으면 더 맛이 별로다. 그래서 요즘은 밀키트라고 해서 반 조리된 상태로 배달되어 간단히 요리를 해서 먹는 방법도 있지만 가정집 부엌은 화력도 약하고 1분 먼저 불을 끄냐 마냐 하는 디테일이 떨어지니 맛은 여전히 가서 먹는 만 못하다. 

 

그러나 올해는 아무도 만나지 않는 조용한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했다. 늘 이 시기에는 사람들을 만나 먹고 노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올해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우리처럼 열심히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텐데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확진자 수가 야속하기만 하다. 마치 학창 시절 극기훈련에서 하던 "마지막 구호는 복창하지 않습니다"가 떠오른다. "팔 벌려 뛰기 15개! 몇 개?" "15개!" "목소리가 작습니다. 20개! 몇 개?" "20개!" "20개 시작!"하며 혼돈으로 몰고가 꼭 마지막 20을 외치는 사람이 나오고, 그러면 다시 20개를, 또다시 10개를…... 결국 내가 팔을 움직이는 건지 팔이 나를 움직이는 건지 3개를 했는지 5개를 했는지 정신이 몽롱해지다가 얼떨결에 내가 마지막 구호 10을 외쳐도 이상할 게 없던 그 훈련 말이다. 어쩐지 코로나19는 끝날 듯 말 듯 그렇게 10개월을 훌쩍 넘기며 2020년이 먼저 끝나게 생겼다. 

 

요양원에서, 기도원에서, 학원에서, 학교에서, 교회에서, 회사에서, 회식과 집회에서…... 꺼진 불이 다시 피어오르듯 여기저기서 끝날 듯 끝나지 않다가 이렇게 다시 3차 대유행이 되었다. 결국 5인 이상 집합 금지라는 초강수를 정부는 외쳤고, 나를 위해 너를 위해 우리를 위해 우리 가족도 잠시 멈춤을 선택하였다. 올겨울을 위해 계획되어 있던 모든 지인과 친인척 연말 행사를 취소하였고 스키, 여행 계획도 취소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외식도 중단되었다. 정신을 집중하여 마지막 구호를 외치지 않기 위해 다시 한번 온 힘을 다해 보기로 한다. 

 

코로나 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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