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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다짐
01/04/21  

밤새도록 비가 미친 듯이 퍼붓고 있다. 바람도 심하게 불어 집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폭풍우가 세상 모든 것을 쓸어갈 태세다. 저 비바람이 온 세상을 휩쓸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싸악 쓸어가 버리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잠이 들었다. 거친 비바람 속에서도 편안하게 잘 자고 일어났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우리 동네에서 보이는 마운틴 발디는 어느덧 하얀 겨울옷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라미라다에 사는 친구가 자기 집 앞에 눈이 내렸다며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었다. 하얀 눈이 거리를 살짝 덮고 있었다. 라미라다에 눈이 왔다니......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언제 폭풍우가 쳤냐는 듯이 하늘은 화장기 하나 없이 맑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친구와 만나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점심식사를 함께 하는 날이었다. 11시 정각에 만났다. 준비해 간 대추차를 한 잔씩 나눠 마시고 걷기 시작했다.

 

몇 걸음 걷다가 친구가 물었다. "화를 내면서 크게 소리를 지른 적이 있습니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아, 그럼요. 집에서는 물론, 사무실에서도 소리를 지르곤 했지요." "아, 그래요? 내 생각에는 절대로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를 분 같지 않은데......" "혹시 무슨 일 있으십니까? 왜 그런 질문을 하지요?"

 

"사실은 제가 집에서 아내에게 자주 소리를 지르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올해를 마감하면서 새해부터는 아무리 화가 나도 소리를 지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고, 아내에게도 약속을 했습니다. 내 힘으로 그러기 힘들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더 확실히 다짐하기 위해서 친구들에게도 제 약속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난 깜짝 놀랐다. 언제나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무조건 잘했다고 칭찬으로 대화를 풀어가는 친구가 화가 날 때면 소리를 크게 지른다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친구는 목회를 하고 있는 현직 목사이며 남에 대한 배려가 남다른 분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나는 아이들 어릴 때, 꽤 많이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며 야단을 치지 않았나 싶다. 별일 아닌데 화부터 내곤 했다. 분노가 끓어오를 때마다 주체하지 못하고 악을 쓰던 지난날의 모습이 떠오른다. 화를 참지 못하고 상대를 가리지 않고 분노를 표출했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자기들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왜 아빠는 자기들에게 소리 치냐며 따졌다. 언성을 높이지 말고 말로 하라고 했다. 여러 차례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내가 소리친다고 달라지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조용히 얘기하나 크게 얘기하나 이미 일어난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고 아이들의 태도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반감만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후부터는 화기 치밀어 오를 때는 그 순간을 피하고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노력했다. 그러면서 아이들과의 관계도 더 좋아지고 마찰이 덜하게 되었다.

 

내 생각에 빠져 걷고 있는데 친구가 물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꼭 한마디만 한다면 무슨 말을 하실 겁니까?” “예, 새해에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아주 좋으신 말씀입니다. 나이를 잊고 최선을 다하며 사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목사님은 어떤 말씀을 하실 겁니까?” “예, 아내에게 소리치지 않는 남편이 되겠습니다.”

 

그렇다. 그 어떤 거창한 말보다도 항상 곁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의 말씀, 이보다 더 아름다운 약속은 없을 것이다. 친구는 다짐대로 실천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미친 듯이 불던 바람도 세상을 떠나보낼 듯이 퍼붓던 비도 그친 지 오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바라보며 2021년을 향해 힘차게 발걸음을 옮긴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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