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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집사
01/04/21  

어릴 때 하얀 털에 분홍 코 새끼 고양이를 잠시 키웠던 기억이 너무 좋아서 평생 가장 좋아한 동물은 고양이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내 눈앞에 새끼 고양이가 있었고 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행복했었다. 얼마나 좋아했던지 집에 있을 양이가 너무 보고 싶어서 학교 마치면 뛰어서 집에 가곤 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의 첫 반려동물이었던 양이는 우리와 오래 함께하지 못하고 병으로 무지개 다리를 건넜고 그때 난생처음 경험한 생명체와의 이별은 너무도 쓰리고 아팠다. 

 

언젠가는 꼭 한 번 다시 고양이를 키워야지 생각은 했지만 그날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빨리 그날이 찾아와 얼마 전 나는 남매 고양이 두 마리를 입양했다. 암컷은 L, 수컷은 A라 이름 짓고 요즘 남편과 나는 이 아이들 육묘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다. 고맙게도 어린 두 생명은 생각보다 무난하게 우리 집에 적응해가고 있다. 둘이 사이좋게 잘 노는 데다가 밥도 야무지게 먹고 배변도 알아서 처리하고 하루 16시간 이상 알아서 잘 자는데 얼마나 기특한지 보고 있으면 마치 늦둥이를 본 나이 든 엄마처럼 실실 웃음이 난다. 

 

살면서 놀라우리만큼 충성스러우며 애처로울 정도로 사람을 잘 따르는 귀엽고 잘생긴 개들을 수없이 많이 봐왔지만 나는 어쩐지 불러도 안 오고 안으면 도망가버리는 고양이가 더 좋다. 그리고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양이파인 나는 고양이가 개보다 좋은 이유를 수십 개씩 나열할 자신이 있다. 이에 반발할지 모르는 강아지파에게 굳이 변명해 보자면 나는 그저 정우성이나 현빈보다 내 남편이 더 좋을 뿐이고 더 좋은 이유를 거침없이(아마도?) 나열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한 거다. 

 

고양이를 키워보지 않은 분들을 위해 몇 가지만 소개해보겠다. 우선, 고양이는 느긋하다. 웬만해서는 특별히 서두르는 법이 없다. 물론 배가 몹시 고플 때는 '언제 와있었지?' 싶을 정도로 재빨리 밥그릇 앞을 지키고 있지만 절대 오두방정은 떨지 않는다. 그 인내와 침착함은 배우고 싶은 덕목이기도 하다. 또 아무리 배가 고파도 절대 욕심내 과식하지 않는다. 그릇에 음식이 남아있어도 적당히 배가 채워지면 물러설 줄 안다. 음식을 탐하지 않는 절제력은 인간보다 낫구나 싶을 정도이다. 

 

게다가 고양이는 자신을 관리하고 가꿀 줄 안다. 배설물을 뒤처리하고 틈만 나면 자기 자신을 그루밍하는 정결함은 동물 중 최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고양이의 해맑은 도도함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매력이다. 마치 짝사랑하듯 하염없이 그 이름을 불러보고, 그 얼굴을 바라보지만 고양이에게 무시당하기 일쑤고 어처구니없게도 결국 그 매력에 흠뻑 빠져버리고 만다. 아무리 밥을 주고 사랑해주어도 1.5미터쯤의 거리를 유지하며 내 곁에 머무니 조금만 더 가까이 가고 싶어서 안달이 날 수밖에 없다. 

 

고양이는 사람을 홀리는 동물이라더니 이번에도 확실해졌다. 우리집은 어느새 고양이 궁전이 되어 가고 있다. 고양이 침대, 화장실, 밥그릇, 장난감 등 고양이 살림들이 점차 늘어나고 고양이들이 낮잠이라도 자면 전 식구가 조용히 각자 방으로 자리를 비켜주고 있다. 얼마나 먹었는지, 얼마나 싸고 잤는지 마치 신생아 키울 때처럼 체크하느라 하루가 어찌 가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반려묘를 키우는 사람을 가리켜 집사라고 하던데 어쩌다 보니 나도 집사가 되었고 마치 오래전부터 제집이었던 양 우리집 곳곳을 누비며 집주인 행세를 하는 녀석들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본다. 고양이들을 데려오며 잘 돌봐주고 편안한 집을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어느새 내가 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받고 있다. 하루의 피로와 고단함은 물론 인생의 시름과 세상 풍파까지 잊게 해 주니 말이다. 

 

오늘 내가 "고맙다. 잘 먹고 이렇게 예쁘게 잘 싸줘서 정말 고마워." 하며 똥을 치우고 있는데 지나가던 남편이 "그럼 나는? 나는 훨씬 많이 싸는데…... 나한테도 고마워? 나는 자기 도움도 없이 잘…..." 하는데 ‘픽’ 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래, 고맙다 고마워. 잘 먹고 잘 싸는 게 제일이지.' 마음속으로 속삭이며 2021년 새해를 맞는다. 어쩌다 집사가 된 나는 2021년 새해, 자신만의 세상을 추구하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고양이의 덕목들을 배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예정이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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