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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여행
04/23/18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몇 년 만인지 모른다. 아이들 어릴 적에는 여기저기 많이 다녔는데 커지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함께 하지 못했다. 몇 달 전부터 의논해서 잡은 여행이었다. 대학에 다니는 딸,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막내아들과 2박 3일 인디오에서 지냈다. 손자 졸업식 참석차 오셨던 장모님도 함께였다. 한국에서 출장차 와있는 큰아들도 같이 가고 싶었지만 녀석은 주말에도 바쁜 눈치였다.
 
 
4~5년 전 쯤에 인디오에서 큰딸 부부와 함께 지낸 적이 있다. 차 안에서 막내가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큰딸은 두 아이 밖에 없었다. 그 후 둘을 더 낳아 지금은 네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막내는 그 두 아이들과 있었던 일을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왔다 간 적이 있다는 것은 기억나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까맣게 잊어 버렸다. 막내가 말했다.“아빠, 그때 내가 처음으로 아빠를 이겼잖아.”뭘 이겼다는 걸까. 생각하는데 녀석이 말했다.“탁구, 그때 내가 처음 이겼어.”
 
 
기억난다. 막내가 중학교 들어가던 해였다.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 6학년이다. 한 해 전에 어느 여행지에서 처음 탁구를 쳤다.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아빠에게 진 것이 분했을 거다. 그 후로 탁구대가 있는 친구 집에 드나들며 탁구를 치는 눈치였는데 결국 아빠를 이기게 된 것이다. 그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번에도 꼭 탁구를 치자고 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대결이다.
지리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이렇게 참패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더블 스코어 차이로 졌다. 아무리 볼을 회전시켜 낮게 깔아 서브를 넣어도 척척 받아 넘겼다. 그리고 찬스가 나면 거침없이 강공을 펼친다.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 준비를 하는 엄마에게 딸이 말했다.“휴가 기간인데 좀 릴렉스해요.”일상과 똑같으면 그게 무슨 휴가냐고 웃으며 말했다.“아침 일찍 서둘러 선선할 때 한 바퀴 둘러보고 들어와 태양이 뜨겁게 내려 쪼일 때 쉬는 편이 좋으니까.”엄마가 말했다.
 
 
100도가 넘는 한낮의 더위를 피해 아침 일찍 나섰다.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동쪽에서 서쪽까지 35마일을 자동차로 지나며 둘러보았다. 방문객들이 그리 많지 않아 한가롭게 구경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대자연이 만들어낸 기묘한 바위산과 암석, 조슈아 트리를 보며 탄성을 질러댄다. 박물관에 들려 한 바퀴 둘러보고 마운틴‘산 하신토’의 중턱까지 오르내리는 트램을 타러 갔다.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해발 8,000피트가 넘는 곳에 식당이 있다. 잠시 주변을 걷다가 점심을 먹었다.
 
 
마지막 날 저녁, 가족회의를 개최했다. 여행지에서 무슨 회의냐며 거부하는 아이들을 억지로 식탁으로 모았다.
 
 
첫째,“이제 막내가 대학으로 떠난다. 그럼 가족들이 모두 흩어져서 각자의 삶을 살게 된다. 바쁘게 살다보면 가족끼리 자주 못 만날 수도 있다. 아무리 바빠도 일 년에 세 번은 만나야 한다.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는 무조건이고 한 번을 더 만나야 하는데 언제가 좋으냐?”아이들이 말했다. 여름이 좋다고. 그래 그럼 여름에 만난다.
 
 
둘째,“대학 졸업 후에 직장 생활을 하건 자기 일을 하건 수입이 생기면 무조건 1/10은 아빠 엄마에게 드려야 한다.”막내아들이 말했다.“아빠, 나는 20% 생각하고 있었는데.”“20%는 많다. 10%면 된다. 그것도 결혼하게 되면 5%로 낮춰진다.”딸은“왜 10%를 줘야 하냐?”고 물으면서 오빠와 언니도 주고 있냐고 물었다. “주지 않고 있다. 오히려 두 사람은 아빠가 도와줘야 하는데 아빠도 형편이 좋지 않아 돕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딸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공평치 못하다는 거겠지. 그냥 밀어 붙였다.“자, 양 손을 테이블 위에 내놓아라.”아이들 손을 하나하나 차례로 포개게 하고 내 손을 얹었다. 결정된 두 가지를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했다.
 
 
몇 해 전 가족 여행에는 아버지도 함께 갔었다.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다. 추워서 야외 활동을 꺼리는 식구들은 숙소에서 지냈고 아버지와 막내는 빅베어 호수에서 낚시를 했다. 송어를 두 마리나 잡았다. 그 여행에 다녀온 후 아버지는 낚싯대와 장비들을 모두 손자에게 주었다. 손자에게 낚싯대를 챙겨주고 미끼를 끼워주며 낚시를 가르쳐주던 아버지가 지금은 걷지 못하고 하루 종일 누워서 지낸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할 먼 여행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음 가족 여행에는 아들딸, 손자 손녀들과 아버지를 모시고 가고 싶다. 막내가 아버지의 낚싯대로 잡은 물고기로 요리해서 온 식구들이 둘러 앉아 먹는 상상만 해도 즐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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