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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 나눠 쓰자는 친구
01/19/21  

초등학교 시절, 동네에서 몇 발자국만 걸어가면 빨래할 수 있을 정도로 맑은 물이 흘러 사람들이 빨랫골이라 부르는 곳에 살았다. 그 골짜기 따라 조금만 더 올라가면 조그만 동굴이 있었다. 동굴 입구는 무당이 굿을 하거나 산제를 올린 후 뒤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여기저기 음식물 찌꺼기들이 뒹굴고, 촛불을 켰다가 끄고 흔적을 그대로 남겨두어 보기 흉했다. 이 때문에 동굴 안에 발들이기를 꺼려했다. 그러나 친구들은 자주 들어갔다 나오며 자신의 용기를 자랑하곤 했다.

 

큰맘 먹고 친구들 따라 동굴 속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무당이 남긴 흔적들이 펼쳐져 있는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서 점점 어둠이 짙어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굴의 천장이 낮아지면서 발뒤꿈치를 들면 고개가 닿을 것만 같았다. 한 시라도 빨리 밖으로 나가고만 싶어졌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떨리는 가슴을 누르며 조심스럽게 걷는데 앞에 가는 친구들이 뭐하고 얘기한다. 뭔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친구들의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동굴 안에 울려 퍼지기 때문이었다. 몇 발자국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어둠이 주는 공포심이 온몸을 지배했고, 곧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었다. 바로 그때 동굴 벽에 붙어 있는 박쥐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귀신의 형상과 다름없었다. 서둘러 뛰어 나왔다.

 

요즈음 동굴 속을 헤매고 있는 느낌이다. 끝까지 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끝이 어디인지 모른다. 어둠이 온 세상을 지배한다. 전후좌우가 구별이 안 된다. 무엇인가 갑자기 튀어나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지배하고 있다. 사람들의 소리도 메아리처럼 뒤섞여 혼돈을 줄 뿐, 뚜렷한 지침이 없다. 방향도 설정이 안 된다. 아무도 경험해 보지 않았던 세상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동굴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우리 모두 동굴 속에 갇혀 있는 셈이다.

 

지난주 목요일, 친구와 산책을 하고 있었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일주일에 두 번(화, 목)이나 만나 걷는데도 할 얘기가 참 많다. 한 십여 분쯤 걸었을까 말까 했을 때 친구가 말했다. 내가 공원에 오기 전에 은행 ATM 머신에서 한 번에 맥시멈으로 뽑을 수 있는 돈, $800을 뽑았다면서 절반씩 나눠 쓰자며 돈을 앞으로 쑤욱 내밀었다. 오마이갓, 아니 왜 그러냐? 내가 먹고 살기 힘들어 보이냐고 물었다. 친구는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친구끼리 용돈을 나누어 쓰자는데 뭐가 이상하냐며 계속 돈을 받으라고 했다. 지나는 사람들이 보기 민망할까봐 얼떨결에 돈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친구는 자기가 한 행동이 어색했는지, 아니면 내가 자기를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그런지 어릴 적 이야기부터 길게 늘어놓았다. 그 얘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어릴 적에 어머니가 사탕을 주셔도 몇 개를 주는 게 아니라 여러 개를 주면서 친구들하고 나누어 먹으라고 해서 무엇이든지 친구들과 나눠 먹었다. 가깝게 지내던 친구 둘이 한국에 사는데 둘 다 형편이 어려워 자기가 가끔 돈을 보내주면서 도와주고 있다. 그러니까 자기가 돈을 건넨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

그런데도 기분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어려워도 친구가 아무런 조건 없이 건네주는 돈을 받아야 할 정도는 아니지 않은가? 주머니 속의 돈은 흡사 송곳처럼 계속 나를 찔러 댔다. 그러다 한 달 전쯤의 일이 떠올랐다. 그날도 우리는 함께 산책길에 나섰다. 얼마나 걸었을까? 친구가 물었다. 팬데믹으로 회사가 어렵지 않느냐고. 친구의 물음에 76페이지 발행하던 신문이 60페이지로 줄었으니 회사의 수익이 많이 줄었고, 그래서 약간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고 대답했었다. 친구는 그것을 기억하고 돈을 나눠 쓸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여겼다.

 

산책할 때 내가 준비해간 음식도 한 이유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산책을 마친 후 친구와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는데 이후부터는 식당에 가는 대신 내가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집에서 냄비와 버너, 음식 재료 등을 준비해 가서 산책을 마친 후 공원에서 떡만둣국, 라면, 칼국수 등을 끓여 먹기도 했고 어떤 때는 프라이팬에 갈비를 구워 먹기도 했다. 매번 메뉴를 달리하여 식사를 했고, 식사 후에는 대추, 계피, 생강을 넣어 18시간 이상 달인 차를 마셨다. 친구는 늘 내가 준비해간 음식을 먹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그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돈을 건넸을 것이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친구에게 잘 쓰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무실에 돌아와 앉아 있는데 친구가 전화했다. 자기가 돈을 잘못 건네주었다며 $400인 줄 알았는데 $320이라고 했다. 다음에 만나면 $80을 더 주겠다고 했다.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세어보니 $20짜리 16장이었다.

 

화요일 만나자마자 친구는 자기가 반쯤 된다고 생각하고 줬는데 $320이었다면서 $80을 건네주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받았다. 용돈 나눠 쓰자는 친구를 위해 다음 산책 날 함께 나눌 메뉴는 삼계탕으로 정했다.

 

일주일에 두 번 만나 함께 걷는 친구 덕분에 나는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고 동굴 속의 생활을 잘 견디며 살고 있다. 어린 시절 동굴 속에 들어가 함께 놀던 친구들은 요즈음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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