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에서 답을 얻다
04/23/18  
젊은 친구의 대학 졸업파티에 초대받았다. 친구는 21살의 젊은이로 현재 세리토스 칼리지 이사이다. 미국 공립대학의 이사들은 선거로 뽑는다. 그는 지난해 대학생 신분으로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지역 정치인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젊은이의 앞날을 축복해 주기 위해 파티 장소인 공원으로 모였다. 100여명 정도 되었다.
 
 
몇몇 아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한 친구와 함께 식탁에 앉았다.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이 말을 걸었다. 동양인이 필자밖에 없으니까 어떤 사람인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자기는 젊은이의 가족과 오랜 친구라면서 곁에 앉아 있는 부인과 아들을 소개했다. 공인회계사로 모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고도 했다. 많은 얘기를 나눴다. 필자가 한국에서 고교 교사였다고 하니까 왜 안정된 생활을 두고 미국으로 이민을 왔냐고 물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한참 망설였다. 긴 얘기를 아무리 짧게 줄여도 5분 이상은 얘기해야 하는데 처음 만난 사람하고 나눌 얘기는 아니다. 한 마디로 간단하게 말했다.‘방향을 확실히 아니까 한국을 떠나서도 커다란 불편 없이 살고 있다’고.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물론 인생에 정답은 없으니까.’한국에서 윤리와 철학을 가르쳤다고 한 나를 의식하고 한 말이리라.
 
 
그 사람과 나눈 대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맞이한 주말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흐린 날이다. 기온도 낮은 편이다. 화씨 60도 정도에 불과하다. 라하브라 하잇츠로 넘어가는 하시엔다 길로 들어선다. 굽이굽이 휘어지는 길이다. 중턱을 지나서부터는 나무들이 우거지고 숲이 무성하다.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옅은 안개가 낮게 깔려 있어 그 기분을 더해준다.
 
 
전방에 갑자기 동물이 나타났다. 코요테다. 도시 한복판에 코요테라니. 대개 두세 마리가 같이 다니는데 녀석은 혼자다. 자동차 전조등 불빛에 눈이 부실 텐데 피하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고 제 속도를 유지하며 천천히 길을 건넌다. 겁이 없다. 자동차를 거의 멈추다시피 하며 녀석을 바라본다. 뾰족한 주둥이, 째진 눈, 흰색이 섞여있는 잿빛에 가까운 갈색 털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예쁜 구석이 없다. 참 야비하게 생겼다. 거기다 삐쩍 말랐다. 잘 먹지 못하고 사는 모양이다. 오랜 굶주림 끝에 사람들 사는 곳으로 내려와 먹이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인가? 먹잇감 찾기가 그만큼 힘들어진 것일까?
 
 
레인저 본부에 들려 무전기를 챙기고 호출번호를 받은 후 산행을 시작한다. 워터라인 트레일은 등산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70~80년대에는 주로 이 길로 다녔다. 커다란 홍수로 길이 없어지고 야영장이 비탈로 변하는 등, 지형이 바뀌면서 South Fork Trail을 만들었다. 지금은 워터라인 트레일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동네 주민들이나 레인저들만 다닌다. 필자도 2012년에 처음 알게 된 후로는 줄곳 이 길을 고집하고 있다.
 
 
물길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길이 이어진다. 비가 오랫동안 오지 않아 수량이 줄어 수위가 많이 낮아졌다. 물고기들도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본 것이 2년은 넘은 것 같다. 완전히 바닥이 드러난 곳도 있다. 물이 닿지 않아 이끼도 제 색깔을 지키지 못하고 누렇게 말라 비틀어져있다. 물고기들이 떠나 버린 워터 라인. 가슴이 아프고 속이 상한다. 지독한 가뭄이다. 무심한 새들은 노래를 계속 하고 있다. 과연 이 계곡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갈림길이 나온다. 분명히 드라이 레이크는 오른쪽에 있다. 그러나 길은 왼쪽으로 나있다. 사람들이 잘못 들어갈까 이정표까지 나무 위에 달아 두었으나 이정표를 보지 못하고 간혹 잘못 들어서는 사람이 있다. 필자도 이정표를 보지 못하고 무조건 오른쪽으로 들어갔던 적이 있다. 엄청 고생했다. 길이 나있지 않으니 거의 새 길을 만들면서 올라가야했다.
어느 곳으로 가야할지 뚜렷하게 길이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당황하기 쉽다. 그러나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어느 쪽인지 방향만 확실히 알고 있으면 잘못된 길로 들어 섰다해도 바로 제 길을 찾을 수 있다. 그 방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으면서 편한 길을 찾거나 길을 만들어 가면서 목적지로 갈 수 있다.
 
 
하산길에는 그린닐 마운틴으로 갈 뻔했다. 서너 걸음 가다가 돌아섰다. 좀 더 가더라도 두렵지 않다. 왼쪽 비탈을 내려가면 가려던 길과 만나기 때문이다. 그 어떤 길로 잘못 들어서더라도 당황하거나 겁나지 않는다. 어디든 길이 있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길을 찾을 자신이 있다. 어디로 가야할 지 방향을 정확히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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