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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왜 거기서 나와 (2)
01/19/21  

얼마 전 우리 동네 큰길에 또 다른 코로나19의 희생양으로 보이는 어느 카페가 문을 닫고 새로운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인 것을 목격하였다. 이번엔 어떤 가게가 생기려나 하며 지나쳤는데 며칠 후 다시 그 길을 지나며 본 간판은 교촌치킨 신규점! 게다가 배달 전문점이 아니고 테이블에 앉아 시원한 생맥주와 함께 치킨을 먹을 수 있는 펍 스타일 식당이다!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가 내부인으로 보이는 사람과 오픈 날짜까지 확인하였다. 그리고 나는 당당히 개업 첫날 첫 손님으로 그 치킨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와 하등의 관계도, 아무 상관도 없는 가게일지라도 개업 첫날이 주는 설렘이라는 게 있다. 신규점이라는 흥분에 발걸음이 가벼워 어느새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내 뒤를 이어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에 따라 식당 안에 테이블을 띄엄띄엄 앉아야 하다 보니 금세 만석이 되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젊은 손님들보다는 중장년층이 많았고 전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마스크 너머 설렘과 신남이 폴폴 풍겨 나고 있었다. 

 

그러나 손님을 맞이하는 직원들의 태도는 오히려 대조적이었다. 첫날이라고 긴장이라도 한 것일까 설렘이나 기쁨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려서 그런가 반가움보다는 근심 어린 표정이 역력하더니 주문을 하려 하니 이제 막 영업 시작해서 주문이 오래 걸릴 수 있다고 한다. 내가 먼저 주문해놓고 남편이 오면 같이 조금만 맛을 보고 남은 것은 집으로 포장해가려는 계획이었는데 제동이 걸렸다. 갓 튀긴 치킨과 함께 맥주 한잔 할 심산이었던 나는 아쉬움에 입꼬리가 축 처지는 듯했다. 집에 기다리는 식구들이 있기에 식당 안에서 먹는 것은 바로 포기하고 포장으로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남편이 오기를 기다렸다. 

 

카운터 근처에 앉았더니 오가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귀에 들어왔다. 언제 열었냐, 배달은 어떻게 주문하냐, 길을 지나다 들어와 메뉴를 둘러보는 손님,  질문을 쏟아내는 손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축하합니다.", 반갑게 인사를 하는 지인 손님, 나처럼 주문 후 고개를 푹 숙이고 스마트폰만 열심히 들여다보는 손님까지...... 늘 배달로만 주문해서 먹던 치킨집에 몸소 앉아 있어 보니 뭔가 활력 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다. 

 

주문할 때 말했듯이 신규점이라 주문이 오래 걸렸고 어느덧 남편도 도착하여 같이 앉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코로나만 아니면 동네 친구들 불러서 맥주 한잔하면 좋겠다. 아지트로 괜찮겠다. 깨끗해서 좋다. 집에서 가까워서 좋다. 술 한 모금도 못하는(치맥은 못하지만 치킨은 매우 좋아함) 남편이지만 오래간만에 굉장히 신이 나서 말이 많아졌다. 

 

그러던 남편이 스마트폰을 뒤적이다가 어? 하며 말을 시작한다. "원래 우리 동네에 있던 지점이 망했나 봐. 프랜차이즈 총괄 웹사이트에 들어가니 이전 지점은 목록에서 사라지고 신규 지점만 뜨네. 아무래도 이전 지점은 본사에서 퇴출당한 것 같아. 너무 더러워서 그랬나?" 남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규 오픈 안내 인쇄물을 가져와 자세히 들여다보니 아니나 달라 전화번호가 우리가 배달해 먹던 그 지점 번호와 같다. 이쯤 되면 이전 지점이 어떻게 되었는지 안 물어볼 수 없는 상황. 

 

"45번 손님"

마침 주문한 치킨이 나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얼른 봉투를 건네받으며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아 근데 여기 전화번호가 저 밑에 지점 번호와 동일하던데 어떻게 된 거예요?" 그러자 부엌에서 사장님으로 보이는 50대 후반의 남성이 나와 "아 저희가 거기서 이사 왔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띠로리…... 

"네?"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면 나의 딱 벌어진 입과 놀란 표정을 바로 들켜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아, 요 밑에 가게가 너무 좁아서 여기 큰 데로 이사 왔어요."

"아…... 같은 사장님이시고요?" 

"네. 그럼요."

 

순식간에 꼬여있던 실타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왜 전화번호가 같았는지. 본사 공식 웹사이트에 이전 지점은 왜 그리 빨리 삭제되고 신규점이 등록되었는지. 신규 매장과 어울리지 않던 오래된 오토바이가 가게 앞에 왜 세워져 있었는지. 지인 손님들이 왜 그리 많았는지. 50대 후반 사장님을 어디서 뵌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진짜 뵌 인물이었다는 사실. 그렇다! 매일 가게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계셨던 그분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나의 호기심과 기다림 그리고 설렘이 와르르 무너지는 알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지만 행여 치킨이 식을까 헐레벌떡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무슨일? 대박! 이 집이 그 집이고 이 치킨이 그 치킨이겠구나 실망하고 있었는데 다르다. 맛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치킨은 새 기름에 라고 했던가? 온 식구들이 오래간만에 엄청 맛있게 치킨을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그리고 이내 모든 것이 다 괜찮아졌다. 잠시 아주 행복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난 역시 뼛속까지 교촌파가 맞는 것 같다고. 입맛은 이리도 간사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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