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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수다
01/25/21  

예년 같았으면 연말연시에 크고 작은 각종 모임들로 분주하게 보냈을 터인데 코로나19로 인해 식구들과 조용하게 보낼 수 있었다. 가끔 만나기도 하고 전화로 안부도 물으며 지내는 제자들과 연말에 식사를 함께하기로 했었다. 그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함께 골프를 쳤던 친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으며 자신도 검사했는데 음성이지만 잠복하고 있을 수도 있어 자가 격리를 시작했다면서 연초에 보자고 했다.

 

송년모임이 신년모임이 되어 대통령 취임식이 있던 날 저녁, 제자들과 만났다. 5시 30분에 만나 7시 50분에 헤어질 때까지 화제의 중심은 ‘건강’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리고 있으니 당연한 것인가? 코로나19에 관한 얘기는 끊임이 없었다. 백신에 대해서 ‘맞지 않아도 된다’, ‘무조건 접종해야 한다’ 둘로 나뉘어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결론은 각자의 몫으로 두기로 했다.

얘기 도중 한 친구가 다리가 불편해서 지팡이를 짚고 나왔다고 했다. 벌써 지팡이를? 마음이 영 불편했다. 그 후로도 건강 얘기는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다. 그때 한 제자가 말했다. “선생님, L선생님이 돌아가셨어요.” 나보다 불과 대여섯 살 많은 L선생님이 세상을 떠났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제자가 말했다. “H 선생님도 돌아가셨어요.” H 선생님은 아주 씩씩한 분이었다. 몸도 단단하고 유머도 풍부했던 분이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노총각으로 오래 살다가 결혼을 한 후로도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분이었는데......

 

새로 신설한 학교에서 신입생들을 맡아 졸업할 때까지 3년간 계속 담임을 함께했던 선생님들이라 유난히 친근하고 가깝게 지냈던 분들이다. 그분들이 30대 초반이었고, 내가 이십대 중반이었다. 제자들은 L선생님, H선생님과 얽힌 추억들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학교 앞에 살던 L선생님 댁에 여러 선생님들이 몰려가서 가끔 고스톱을 쳤었다. L선생님은 결혼한 지 여러 해 되었지만 아이를 낳지 못하고 있다며 아이를 입양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몇 해 지나지 않아 아이를 입양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다른 학교로 전근하면서 연락을 못하고 지냈는데. 이렇게 세상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니 서로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들 다섯이 모였는데 정치 얘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잠깐 미국 정치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더군다나 그날 대통령 취임식이 있는 날인데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나간다면 그것이 더 이상한 것 아닌가. 트럼프의 열렬한 지지자가 한바탕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연임한다’에 $500을 걸었는데 바이든이 취임했다며 $500을 잃게 되었다고 했다. 또 트럼프를 극도로 싫어하는 친구가 날 세워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 다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얘기지만 한편에 기울어진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말없이 듣고만 있던 한 친구가 정치 얘기는 그만하자고 해서야 끝나게 되었다.

 

두 사람은 볼일이 있다며 급히 떠났고, 남은 사람들끼리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커피타임에서는 주식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한 친구가 모 자동차 회사에 투자했는데 20여 달러 하던 주가가 40여 달러로 올랐다가 곤두박질치면서 16달러 정도까지 떨어졌다고 했다. 그럼 지금이라도 다 팔아야 하지 않은가 물었다. 그러자 제자는 떨어지는 주식을 계속 사들이고 있다고 했다. 아니 떨어지는 주식을 사면 어떡하냐고 물으니 가만히 듣고 있던 친구가 ‘떨어질 때 사기도 하는데 이를 물타기라고 한다’ 면서 주식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 제자에게 ‘자네도 주식에 투자를 하고 있는가?’ 물었다. 그는 많이 하지 않고 몇 가지 종목을 사서 갖고 있다고 했다.

 

주식에 아예 관심도 없고 단 한 번도 주식에 투자해본 적이 없기에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지만 잘못하면 망할 수도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투자한 돈이 튀겨져서 많은 이득을 얻지는 못할망정 손해는 보지 말아야 하지 않은가. 100달러를 투자했다면 적어도 100달러는 그대로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아주 단순한 계산법으로 인생을 살아왔기에 크게 성공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 한 번도 일확천금을 꿈꿔본 적은 없다. 기껏 했던 일이 복권을 사는 일이었다. 단숨에 몇 백만 달러를 손에 쥘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보다는 재미삼아 복권을 샀던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것도 시들해졌다.

 

두 사람의 주식이야기를 들으며 혼자 생각에 잠겨 있었다. 커피가 식어 갈 무렵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자는 인사말을 남기고 헤어져 돌아오는 내내 지팡이 짚고 걷던 제자의 ‘물타기’가 성공하기를 기도했다.

 

다음날, 코로나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제자가 백신 접종 예약 사이트를 전화로 알려주면서 꼭 맞으라고 신신당부했다. 접종을 망설이고 있었던 나답지 않게 서둘러 사이트에 들어가 예약을 완료했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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