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밥돌밥, 이제 그만하고 싶다
01/25/21  

세상에 태어나서 평생 동안 제일 많이 한 고민을 꼽으라면 그건 진로 고민, 자식 고민, 인생 고민이 아니라 바로 끼니 고민,  "오늘 뭐 먹지?"일 것이다. 특히 요즘같이 밥 먹고 돌아서자마자 또 밥을 해야 하는 "돌밥돌밥" 상황은 거의 끼니의 늪에 빠져버린 것만 같다. 

 

  1. 아침에 일어나 부엌으로 걸어간다. 아이들이 제각각 물어본다. "엄마, 아침 뭐 먹어?"
  2. 오전 10시 30분부터 아이들이 제각각 물어본다. "엄마, 오늘 점심 뭐 먹어?"
  3. 오후 2시부터 아이들이 제각각 물어본다. "엄마, 오늘 저녁 뭐 먹어?"

 

코로나19 상황이 나빠질 때마다 아이들 학교와 학원 모든 것이 중단되었고 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매일 아이들의 삼시 세끼를 챙겨 왔다. 물론 배달음식, 간편식, 반조리 식품, 남편 찬스 등을 적극 활용했지만 밥때가 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아… 뭐 먹지?' 하는 고민에 빠져야만 했고 어쩔 수 없이 뭔가를 결정하고 만들어 내야만 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건 정말 상당한 에너지를 소진해야만 하는 일이다. 올해로 결혼 17년 차지만 여전히 무슨 요리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즐거움보다는 피곤함에 가깝다. 시작부터 끝까지 부산하게 움직여 겨우 한두 요리를 완성해 봤자 결과물은 초라하고 나름 맛있게 되었다고 뿌듯했는데 아이들의 반응은 그저 그럴 때도 많다. 차라리 냉동 피자를 데워주거나 스팸을 구워 줄 때 반응이 더 좋을 때면 화딱지가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다. 게다가 아이들 입맛은 또 얼마나 제각각인지......

 

하늘로 유학 간 첫째는 또래보다 몸집이 작은 편으로 특별히 가리는 음식은 없었지만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과식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 아이가 나보다 많이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메뉴는 싸구려 맥 앤 치즈였다. 도저히 느끼해서 두 숟갈 이상 못 먹을 것 같은 샛노란 맥 앤 치즈를 맛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한 사발씩 싹싹 긁어 먹는 모습이 늘 신기했다. 아이는 방학하면 먹을 거라며 아껴둔 맥 앤 치즈 한 박스를 결국 먹지 못하고 떠났다. 방학을 한 주 남겨놓고 말이다. 

 

우리 집 유일한 딸, 밥을 좋아하는 둘째는 우리 집에서 아저씨 입맛으로 통한다. 제일 좋아하는 메뉴는 카레나 찌개를 밥에 비벼 먹는 것이다. 아무리 맛있어도 먹기 번거로운 음식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들은 없어서 못 먹는 새우나 게도 발라 먹기 귀찮다며 동생에게 양보하며 선심을 쓰곤 한다. 밥을 좋아하다 보니 고기 한 점도 밥 없이 먹지 않는다. 배부르니 이제 남은 고기만 먹으라고 해도 밥이랑 같이 먹어야 한다며 밥을 더 달라고 한다.

 

셋째는 누나와 달리 새우, 게, 뼈에 붙은 고기도 잘 발라 먹는다. 하지만 우유, 요구르트, 바닐라 아이스크림, 생크림 등 우유 맛이 나는 것은 일체 먹지 않는다. "우유 먹어야 키 큰다"는 옛말이 전혀 허튼소리는 아니었는지 (전문의는 우유와 키는 상관이 없다고 했지만) 학교에서 급식을 1등으로 먹고 집에서도 고봉밥을 먹지만 키가 제 학년에서 제일 작은 아이다. 전문의도 찾아갔는데 결핍된 영양소도 없고 초등학교 2학년 뼈 나이가 4살 반인 걸 제외하고 다른 문제는 없다고 했다. 올해 4학년이 되는데 본인도 이제 슬슬 키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넷째는 밥을 좋아하지 않는다. 식사할 때 늘 좋아하는 반찬 위주로만 먹다 보니 남들이 식사를 끝낼 무렵에도 반찬만 동이 나고 밥은 절반씩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어릴 때는 탄수화물 섭취도 중요해서 밥도 꼭 먹어야 한다고 아이를 타이르긴 하지만 밥보다 반찬을 좋아하는 건 나를 닮은 것 같다. 나도 밥을 많이 먹어서 금세 배가 차 버리면 괜히 억울한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이렇게 아이들 저마다 입맛이 다르고 선호하는 것도 다르다 보니 식사를 준비하기 전 남들보다 고민이 더 깊을 수밖에 없다. 라면 하나를 끓여도 아직 라면 못 먹는 아이를 위해 짜파게티, 매운 거 못 먹지만 라면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순한 라면, 얼큰하게 먹고 싶은 어른들을 위해 진한 라면, 이렇게 세 종류는 기본이다. 국이나 찌개를 끓여도 누구 그릇에는 두부를 더, 누구 그릇에는 파 빼고, 누구 그릇에는 감자 빼고, 어른 그릇에는 청양고추 추가 등등 각기 다른 기호가 반영되어야만 한다. 엄마가 가족을 위해 밥하는 게 당연하지 삼시 세끼 차리는 게 뭐 대수라고 이걸 불평하냐며 딴지를 거는 사람이 있다면 일주일 정도 우리 집 주방장으로 초빙하고 싶다. 

 

이제 정말 돌밥돌밥은 그만하고 싶다! 지난 일 년 마이 묵었다 아이가~ 부디 봄이 오기 전에, 새 학년이 시작되기 전에 모든 상황이 호전되기만을 바란다. 작년 한 해 학교에 가지 못해, 친구들을 만나지 못해, 마음껏 뛰어놀지 못해 힘들었던 우리 아이들이 부디 올해는 제대로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상황이 오길 간곡히 바래본다. 아이들은 매일 학교에서 영양사님이 만들어주시는 급식을 먹고 나는 혼자 조용히 점심 한 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다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말 하루 두 끼만 차릴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 삶은 얼마나 여유롭고 윤택할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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