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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날에
04/23/18  
어려서부터 제복입기를 좋아했다. 중학교 입학하자마자 어머니를 졸라 보이스카우트 대원이 되었다. 1학기 성적표를 받고 학급석차가 58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보이스카우트 단복을 벗어야 했다. 고교 진학 후에는 사관학교 진학을 희망했다. 장교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세상일이 내 마음 먹은 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 법.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남동생 둘은 모두 사관학교를 졸업했고 각각 육군과 공군 장교가 되었다. 큰 동생은 소령으로 예편했고, 막내는 올해 장군이 되었다.
 
 
제복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살아온 탓인지는 모르지만 자의반 타의반으로 교직생활을 하던 중에 보이스카우트 지도자가 되었다. 그 후 한국에서 15년, 미국에서 22년, 총 37년 동안 보이스카우트 지도자로 활동해왔으며, 지도자들을 교육시키는 자격을 갖는 교수훈련까지 마쳤다. 제복의 꿈을 이루긴 한 셈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2012년부터는 자원봉사 레인저로 활동하고 있다. 주말이면 레인저 제복을 입고‘마운틴 산골고니오’에서 봉사한다.
 
 
이런 제복의 꿈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아버지는 직업군인이었고 경찰관이었으며 세관원이었다. 물론 5.16 군사혁명 이후 공직에서 물러나 평생을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지만. 아버지는 여든이 넘도록 해병대 제복을 즐겨 입었다. 해병대 모임이 있는 날이면 제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군화까지 신고 참가했다. 사람들이 전해주는 얘기에 의하면 산소 호흡기를 옆에 달고도 해병대 군복을 입고 행사에 참가한 적도 있다.
 
 
그런 아버지가 꼼짝 못하고 누워 있다. 아버지는 양노 보건 센터에서 생활한다. 하루 종일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한 채로 늘 똑같은 옷을 입고 누워서 지낸다. 옷장에 옷을 여러 벌 걸어두었지만 아버지는 입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다른 분들은 휠체어를 타고 열심히 움직이지만 아버지는 휠체어 탄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당신 자신이 휠체어를 탄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눈치다. 아들에게도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은 거다. 딱 한 번 병원갈 때 마지못해 휠체어에 탔다. 그 후로는 병원에도 가지 않았다. 의사가 아버지에게 와서 진료하기로 했다.
 
 
아버지를 만날 때마다 묻는다.“아버지, 일어나 걷지는 않고 온종일 누워만 지내세요?”늘 아버지는 같은 대답을 한다.“걷지 못하니까.”그 다음 질문도 언제나 같다.“운동도 안 하세요?”“하루에 한 번은 해. 사람들이 도와줘서.”언제나 같은 질문을 하고 같은 답을 한다.
 
 
미국에 와서도 아버지는 단 하루도 집에 있지 않았다. 아침 7시에 나가 오후 2시에 들어오는 일과를 쓰러지는 날까지 계속했다. 그러나 이제는 움직이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침대에 누워 벽에 달려 있는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세상일의 전부가 되어 버렸다.
 
 
아버지가 저렇게 흐트러진 모습으로 하루 종일 누워서 지낼 거라고는 생각조차 한 적이 없다. 아버지는 단정한 분이었다. 언제나 청결을 우선했고 깨끗한 옷을 단정하게 입었다. 옷을 손수 다려서 입었다. 그냥 입어도 별 상관이 없을 터인데 청바지와 티셔츠도 반드시 다려 입었다. 심지어 속옷까지 각을 내어 다려 입었다.
 
 
아버지 옷장의 옷들은 완전히 열병하는 병사들 같이 걸려 있다. 옷걸이의 벌어진 부분을 한 방향으로 해서 각이 잡혀 있다. 티셔츠, 와이셔츠, 자켓, 양복 등의 순서로 도열해 있다. 그리고 모자들도 선반 위에 나란히 정렬해 있다.
 
 
몇 해 전부터 아버지와 한국으로 나가 여행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선산이 있는 아버지의 고향으로 가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작은 집을 장만해 드리고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계획에 그치고 말았다.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을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걷지를 못한다. 돌볼 사람이 24시간 있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양로 센터로 모실 수밖에 없었다.
 
 
막내 동생이 장군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는 웃음을 감추지 않으셨다. 막내 동생이 미국 출장길에 잠시 들려 아버지에게 인사드릴 때 아버지는 어쩔 줄 몰라 하시며 당신의 꿈을 막내가 이뤘다며 기뻐하셨다. 막내 동생은 아버지에게 보여드리기 위해 제복을 갖고 와서 갈아입어야 했다.
 
 
아버지날이다. 혼자 힘으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힘들어하는 아버지 곁에 있다. 벽에 달린 작은 텔레비전만 올려다보고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다. 해병대 제복을 입고 첫아들을 들여다보던 아버지는 어디로 갔나. 호기롭게 팔순이 넘었음에도 어울리지도 않는 해병대 제복을 입고 군화를 신고 당당하게 걷던 그 아버지는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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