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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를 소환하다
02/01/21  

지난해 10월, 한국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장에서 나훈아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세월은 또 왜 저래/먼저 가본 저세상 어떤가요 테스형/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 한 야당 국회의원이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이던 김현미 장관에게 추석 연휴 기간에 이 노래가 국민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며 장관도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김 장관이 들은 적이 없다고 하자 야당 의원은 “가사에 국민의 절절한 마음을 위로하는 내용이 있다. 장관도 듣고 국민의 마음을 읽어 달라”며 노래를 틀었다.

 

선거가 끝났다. 개표 결과도 나왔다. 낙선한 대통령은 이에 승복하지 않고 선동적인 연설을 했다. 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몰려가 국회의사당을 잠시 동안 점령했다. 이 사건은 미국 역사에 커다란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 사람은 싫지만 그의 정책을 지지했던 사람들까지 눈살을 찌푸리고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그가 주장하는 대로 선거에 부정이 있었다면 확실히 밝혀야 한다. 그러나 법원은 그가 의문을 제기했던 여러 곳 중에 그 어느 한 곳도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선거에 진 것이다. 자신의 패배를 인정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선거에 의한 투표 결과를 부정하는 것은 법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정의에 대한 도전이다. 국가에 대한 반역이다. 상대 진영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만을 앞세운다면 타협이 이루어질 수는 없다.

 

한국의 현실은 좀 더 노골적이다. 고위층의 부정과 부패 적발을 위한 사찰 기관을 새로 만들기 위해 법적인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여당 전체가 한 목소리를 내며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움직였다. 반대 의견을 펼치던 사람은 당에서 쫓겨났다.

 

또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 측근들의 위법행위 여부를 밝히기 위한 수사를 펼치자 여당과 대통령 측근들은 검찰총장을 쫓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극렬하게 행동했다. 그 와중에 오히려 법무장관이 둘이나 물러났다. 한 사람은 자녀들의 진학을 위해 상장을 위조했고, 자녀들의 스펙을 위해 지나치게 부풀린 이력을 만든 것이 밝혀져 재임 도중에 물러났다. 또 한 사람은 1년여를 검찰총장과 다투다가 스스로 물러나는 모양새를 갖춰 퇴임했다. 이어서 새로 등장한 법무부 장관 후보자 역시 여러 가지 위법-아직 사실 여부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실에 연루된 상황에서 청문회에 앉아 있다. 이뿐이 아니다. 새로 임명된 법무부 차관은 택시기사 폭행과 경찰의 봐주기식 수사가 있었다는 의심으로 끊임없이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 당연히 상대 진영에서는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여당과 야당은 연일 날선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이미 아는 분이 태반(太半)이겠지만 ‘테스형’의 테스는 소크라테스를 가리킨다. 오늘날의 혼란한 세월을 빚대어 노래하면서 2500여년 전의 소크라테스를 소환하여 노래를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아테네(기원전 470~기원전 399)도 오늘날의 한국이나 미국처럼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전반적으로 아테네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부패했던 시기였으며, 개인 윤리의 타락이 극심했고, 정치적 상황도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이 서로 맞서서 싸우면서 도시국가였던 아테네는 서서히 몰락의 길로 접어들던 시기였다.

 

소크라테스는 공직(公職)에 들어가는 것이 자신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사회적 타협을 하는 것이라 여기고 정치적으로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았으나, 어떤 연유에선지는 모르지만 50대 중반에 500명으로 구성된 원로회의 의원으로 1년간 정치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당시 벌어졌던 한 재판에서 그는 온갖 협박에도 불구하고 참주들의 위헌적 유죄판결을 혼자서 끝까지 거부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만년(晩年)에 소크라테스는 불경죄로 기소되었다. 소송을 제기한 세력은 반혁명을 통해 복위한 민주주의 세력이었다. 기소 이유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도시가 숭배하는 신들을 무시하고 새로운 종교를 끌어들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상의 이유는 당시 30인 참주(僭主)의 공포정치에 대한 반동으로 보수적인 민주정(民主政)을 시행하고 있던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가 반민주주의적인 알키비아데스와 30인 참주의 우두머리였던 크리티아스에게 크게 영향을 주었다는 혐의였다. 그는 배심원 투표에서 약 280 대 220의 비율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사형을 언도 받아 기원전 399년에 71세의 나이로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작금의 혼란스러운 사회적 혼란과 정치적 대립의 상황을 보면서 2,500년 전 그리스에서 벌어졌던 정치적 혼란의 시대를 살면서 초지일관 정의에 대한 신념과 믿음을 갖고 투쟁하다가 희생양이 되어 독배를 받고 세상을 떠난 소크라테스를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는 야당에서 여당이 된 민주당과 새로 집권한 세력들이 물러난 대통령을 탄핵하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다. 퇴직한 대통령에게 불명예를 주고, 그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빼앗겠다는 취지다. 바람직한 일인지 모르겠다. 한국의 임기 1년을 남겨 놓고 있는 대통령은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을까 걱정되며 퇴임 후 어떤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적잖이 염려된다.

안창해. 타운뉴스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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