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엄마만 찾는 걸까?
02/08/21  

엄마! 엄마! 엄마!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엄마"라는 소리는 아마도 내 평생 가장 많이 들은 소리가 아닐까 싶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는 분명 안 그랬던 것 같은데 한국으로 온 이후부터인가?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고부터인가? 이상하게 유독 엄마만 찾는다.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는 항상 아빠도 집에 있는데 말이다. 

 

게다가 남편은 자타가 공인하는 꽤나 가정적인 남자이다. 애들이 어릴 때는 아이들 목욕, 이발, 손톱 자르기도 남편이 도맡아 했었고 집에 있는 날은 나보다 훨씬 요리도 많이 한다. 남편이 끼니 준비에 있어서 솔선수범하기도 하고 손맛도 나보다 좋은 편이라 끼니때가 되어도 내가 섣불리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 남편이 요리를 하면 내가 재료 준비를 거들거나 설거지를 맡는 식으로 나름 균형 있게 분담하고 있다. 남편은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는 편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축구, 야구 등을 같이 즐기는 일은 없지만 보드게임이나 축구게임을 같이 하기도 하고 일정 시간 아이들과 함께 보내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보인다. 남편은 일 년에 서너 번은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 여행을 가고 주말에는 꼭 외식을 하거나 잠시라도 바람 쐬러 나가려고 노력하는, 주변에서 부러워하는 자상하고 가정적인 아빠임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정말 신기할 정도로 아쉬울 때 나만 찾는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엄마!", 화장실 뒤처리가 필요할 때도 "엄마!", 코피가 나도 "엄마!", 지들끼리 싸우다가도 "엄마!, 준비물을 못 찾아도 "엄마!, 숙제하다가 모르는 게 나와도 "엄마!", 약을 먹을 때도 "엄마!" 일단 엄마부터 부르고 본다. 물론 토끼같이 귀여운 아이들이 엄마를 부르고 필요로 하면 사랑스러울 때도 많다. 나도 몸과 마음이 한가롭고 여유 있을 때 아이들이 나를 찾아오면 하나도 힘들지 않다. 기꺼이 웃으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필요한 것을 바로바로 채워주고자 한다. 하지만 나도 뭔가를 하고 있는데 시도 때도 없이 계속 나를 찾아대면 정말 신경과민이 올 정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심지어 엄마는 잔뜩 쌓인 설거지를 하고 있고 아빠는 방에 누워 폰을 보고 있는데도 굳이 엄마를 찾아오니 신경질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다. 

 

대체 왜 그런 걸까? 왜 온 식구들이 나만 찾는 걸까? 왜 다 나한테만 물어보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만큼 식구 한 명 한 명 집안 구석구석을 두루두루 파악하고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 남편은 아이들 담임 선생님 이름이며 아이가 몇 학년 몇 반인지 알지 못할뿐더러 물어본 적도 없고 이야기해줘도 다음날이면 잊어버린다. 아이들 발 사이즈, 요즘 교우 관계, 태권도 수업 시간, 학습지 선생님 연락처, 속옷 양말 구분 방법, 친구네 엄마 카톡, 오늘 급식 메뉴,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도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니 아이들이 아빠에게 물어봤자 큰 도움이 안 되고 이야기해줘 봤자 기억도 못한다. 그러는 사이 서서히 틈이 생기고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한국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남편이 이 정도이니 다른 집은 오죽할까?  "우리 아이는 엄마만 좋아하고 엄마만 찾아요"라며 조금은 이 상황을 즐기는 듯 육아에 한발 물러서 있는 아빠들이 수두룩하다. 아빠는 돈 버는 사람, 그래서 육아와 가사는 엄마의 몫이라고 당연한 듯 선을 그어버리는 사람들도 많다. 주변 아이들에게 물어보라.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아빠 외벌이 + 엄마 전업주부 상황을 "아빠는 돈 버느라 매일 회사 다니고 엄마는 집에서 놀아요"라고 이해하고 있는지 알게 되면 깜짝 놀랄 것이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의 어린이들이 아직도 이런 쌍팔년도 사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자녀를 몹시 사랑하면서도 육아가 힘든 이유는 육아 일상의 반복이 주는 피로감 때문일 것이다. 제 아무리 모성애가 투철한 엄마일지라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상황에 가끔은 지칠 수밖에 없다. 하루 종일 아이들을 케어해야 하는 전업맘은 물론이며 밖에서 일하고 집에 들어오면 또 다른 일이 시작되는 워킹맘들은 정말 모두 어메이징한 존재들이다.  내 한 몸 챙기는 것도 버겁고 힘들었던 미혼이었을 때의 나를 생각하면 지금의 나는 정말 오만가지를 챙기고 돌보며 살고 있다. 꽉 막힌 사회가 아무리 엄마들을 그저 몰상식한 아줌마 취급하며 그 가치를 깍아내리고 무시해도 엄마들은 분명 온 힘을 다해 내 몸과 마음을 최대치로 돌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결국 남자들은 이 핑계 저 핑계로 못하는 것들을 해내고 있지 않은가? 

 

이 시점에서 내 남편을 비롯해 아이를 키우는 아빠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육아, 같이 합시다!" 한걸음만 가까이 다가와 관심을 갖고 능동적으로 육아에 참여한다면 온 가족이 행복해질 것이다. ‘돈 버느라 바빠서, 남자는 원래 그런 거 못해서, 남들도 다 그런데’ 같은 옛날 아버지 식의 변명은 이제 좀 아니지 않나? 옛날 아버지들의 쓸쓸한 말년을 목격한 우리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엄마는 타고나서 이러고 사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가 너무 당연한 듯이 여성에게만 육아의 의무를 씌우는 것부터가 문제다. "여성은 모성이라는 본능을 갖고 태어난다." "여성은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등의 문구들도 자녀에 대한 양육과 보호는 남성이 아닌 여성의 역할이라고 합리화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억지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모성과 부성을 구분하지 말고 다시 못 올 아이들의 찬란한 시기에 아빠도 함께 해주면 어떨까? 장담하건대 그럼 분명 아이들이 자연스레 엄마와 아빠를 골고루 찾게 되고 엄마의 한숨도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