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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모를 만두
02/15/21  

 

정월 초하루 친정 엄마를 우리집으로 초빙해 만두를 빚었다. 옛날에는 만두가 상용식이 아니고 정초에 먹는 절식이며 고기만두는 경사스러운 잔칫날에나 먹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 요즘엔 흔하디 흔한 게 만두이다. 여러 브랜드에서 출시된 만두들은 예전에 비하면 종류도 다양하고 맛도 제법 양호해졌고 곳곳에 만두 파는 식당도 많아 그 어떤 음식보다 손쉽게 먹을 수 있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전히 내게 최고의 만두는 집에서 만든 수제 만두이다. 어려서부터 간편한 시판 냉동 만두를 주로 먹었던 우리 아이들은 만두 먹자고 하면 손사래를 칠 정도로 만두를 싫어하지만 할머니표 만두만은 맛있다고 한다. 전 세계를 감동시켜 국내외로 불티나게 팔린다는 대기업의 만두도 절대로 갖지 못한 담백함, 아무리 많이 집어먹어도 질리지 않고 거북하지 않은 향긋하고 깔끔한 수제 만두 맛을 아이들도 귀신같이 알아내는 모양이다.  

 

우리 엄마 만두가 세상 최고인 줄 알고 살았는데 집집마다 만두의 달인들이 한 분씩은 있는 모양이다. 시집오니 시어머니 만두도 참 맛있었다. 시댁은 정초에 꼭 만두를 해 먹는데 시어머니는 만두피부터 도톰하게 직접 만드신다. 요즘 유행하는 속이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얇은 피 만두와는 거리가 멀지만 쫄깃한 식감이 기가 막힌다. 나는 지역별 음식 차이를 잘 알지 못하지만 경상도 출신의 시어머니는 만둣국을 끓이실 때 일반적인 고기 육수 대신 멸치로 담백한 육수를 만들어내고 큰 사발에 국물은 자작하게, 만두는 가득 담아 주신다. 이 만둣국은 자극적이지 않고 시원한 국물에 심플한 재료가 포인트로 많이 먹어도 속이 부대끼지 않고 참 편안하다. 

 

만두는 겉만 봐서는 어떤 재료를 품고 있는지 그 속을 알 수 없는 음식이지만 솔직히 만두 속에 들어가는 재료가 조금씩 달라도 갖은 야채, 푹 익은 김치와 고기를 얇은 탄수화물 피에 싸 먹는 개념 자체가 맛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구워 먹든, 튀겨 먹든, 쪄 먹든 어떻게 조리하든 무조건 맛있을 수밖에 없는 맛, 그렇기 때문에 세계 각국에 만두와 비슷한 음식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중국 딤섬과 완탕, 일본 교자, 멕시코 엠빠나다, 이탈리아 라비올리, 베트남 에그롤 등이 생각나는데 아마 모르긴 몰라도 찾아보면 훨씬 더 많은 나라에 비슷한 음식이 존재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대부분의 맛있는 요리들이 그러하지만 특히 만두를 만들려면 많은 시간과 인내, 정성과 희생이 필요하다. 그래서 김치찌개처럼 함부로 "만두나 해 먹을까?"라고 내뱉지 못하고 나름 큰 결심을 하고 몸과 마음을 추스른 후에야 만두를 만들 생각을 할 수 있다. 특히 이 만두소 만드는 과정이 참 번거로워 돼지고기, 소고기, 김치, 두부, 숙주나물, 당면 등 각종 재료를 다지고, 짜고 버무리는 어머니의 분주한 모습을 보고 있자면 '에이, 괜한 걸 시작했나? 그냥 사서 먹을 걸'하고 살짝 후회가 밀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만두를 빚는 것은 꽤 재미있어서 온 식구가 함께할 수 있다. 엄마가 만두소 만드는 가장 큰 거사를 마치고 나면 나머지 식구들은 보통 이때부터 투입된다. 식구들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으려면 자연스럽게 뭐라도 이야기를 해야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덕분에 오랜만에 가족들의 수다 타임이 펼쳐지기도 한다. 쉴 새 없이 떠들면서도 손은 연신 열심히 만두를 만든다. 소를 한 숟갈 떠서 만두피 중앙에 올려놓고 검지에 물 한번 묻혀 만두피에서 속이 삐져나오지 않도록 모양을 잡고 잘 오므리며 오물조물하면 하나 성공. 조금만 욕심을 내도 만두가 터져버릴 수 있어서 결국 소를 덜어내야만 하니 적당한 소 양을 파악하려면 서너 개는 만들어봐야 감이 온다. 그러나 한 열댓 개 만들고 나면 슬슬 재미도 없어지고 허리도 아파온다. 아직도 한가득 남은 만두소를 보며 한숨이 날 무렵 하나 둘 자리를 뜨지만 엄마는 일어설 수 없다. 저 멀리서 엄마 속 터지게 "도대체 누가 다 먹는다고 만두를 이렇게 많이 해?" 하는 타박 섞인 말도 들리지만 결국 그 많은 만두는 얼마 안가 동이 나버린다. 

 

오늘 만두 빚기의 대장정은 6시간 만에 막을 내렸다. 고생하는 엄마 속도 모르고 만두 쪄지기 무섭게 집어먹은 탓인지 '생각보다 양이 많지 않다'며 엄마는 또 아쉬워하신다. 엄마가 6시간 내내 앉지도 못하고 팔을 걷어붙이고 일한 덕분에 당분간 온 가족이 맛있는 수제 만두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오늘 내가 먹은 만두는 그냥 음식이 아니요, 어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가득 담긴 건강한 슬로푸드이자 치유의 음식이다. 정성이 담긴 맛있는 음식이 마법처럼 마음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다시 경험하는 하루였다. 그리고 맛있게 잘 먹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이제 곧 만두 만드는 비법을 전수받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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