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하우스에서 놀다
02/22/21  

나는 오늘 하루 반나절을 클럽하우스에서 보냈다. 골프장에 있는 클럽하우스가 아니고 요즘 SNS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오디오를 기반으로 한 소셜미디어 어플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SNS 대표주자인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처럼 글이나 사진, 영상이 아닌 오로지 목소리로만 소통하게 되어 있다. 올 2월 들어서 내가 이용하는 다른 SNS에서 '클럽하우스 초대 받았다', '클하에서 유명인을 만났다'는 포스트들이 부쩍 눈에 띄었고 뭐길래 다들 난리인가 싶어서 얼른 검색을 해보았다.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요약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 2020년 미국 실리콘밸리의 두 개발자가 만들었고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두 명이 운영하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어플이었다. 

- 실리콘밸리 기업가들 사이에서 유행하다가 테슬러 CEO 일론 머스크, 페이스북 CEO 마크 주커버그 등이 이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었고 한국에서도 젊은 유명 기업인들이나 연예인들이 나타났다는 기사 이후 급속도로 이용자가 늘어나고 있다. 

- 베타 버전으로 출시한 상태라 현재 아이폰 유저만 사용이 가능하고 어플의 사용자는 초대장을 받아야만 이용이 가능하다. 

- 가입만 하면 바로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다른 SNS와 다르게 반드시 초대를 받아야 가입 가능하다 보니 끼리끼리 권력화, 자기들만의 잔치라며 비난도 받고 있다. 어쨌든 가입하고 싶다고 바로 가입이 되는 게 아니다 보니 초대장을 구걸하거나 돈 주고 사고파는 일도 있으며, 초대된 사람들은 자랑처럼 인증샷을 올리기도 한다.

- 모든 대화는 방에서만 이루어지고 방을 만든 모더레이터(사회자)를 중심으로 그 방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 옛날 채팅방의 방장 같은 느낌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 방에 모인 사람들은 스피커와 리스터로 나뉘고 리스터가 손을 들어 요청하면 모더레이터가 스피커로 수락을 해줄 수도 있다. 

- 시간 차가 있고 수정, 삭제가 가능한 다른 소셜미디어와 다르게 말실수를 할 경우 난처한 상황이 올 수 있다.    

 

인싸들의 소셜미디어라는 기사 제목이 돌았었는데 그다지 인싸이지 못했던 나는 클럽하우스 초대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초대 좀 해달라고 페이스북에 공개 포스팅이라도 올릴 참이었지만 혹시나 싶어서 남편에게 넌지시 "혹시 클럽하우스 알아?" 하고 물어봤다. 나름 얼리 어댑터인 남편은 모르고 있었다. (앗싸! 남편 의문의 1패) 그런데 그 다음 날인가 우연히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남편의 지인이 클럽하우스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른 남편에게 문자를 보내 "자기 친구 000가 클럽하우스 한다고 포스팅했던데 친구한테 초대 좀 해달라고 하면 안 될까? 둘이 친하지 않아?" 남편은 친구가 워낙 유명인이고 인싸라 이미 두 장의 초대장을 다 사용했을 것 같다면서도 연락을 해본 모양이다. 그런데 인싸답게 이미 클럽하우스에 입성한 남편의 친구는 의외로 초대장이 한 장 남아있었고 고맙게도 남은 카드를 남편에게 써주었다. 그렇게 나도 클럽하우스에 입성!  

 

2월 5일에 가입을 했지만 10분 이상 머물러 본 적이 없다가 오늘 작정을 하고 오랜 시간 사용을 해보니 해외 각국에 있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쉽고 편하게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어떤 SNS 보다 뛰어났다. 나이 상관없이 반말로만 진행되는 대화방도 있었는데 정말 모두가 계급장을 떼고 만나는 느낌이었다.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의 방에 키우고 있는 고양이들이 곧 중성화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추천해줄 병원이나 조언이 있냐고 물었더니 1분 만에 뚝딱 답이 나왔다. 친한 선배가 수술 잘하는 수의사라며 본인 이름을 말하면 잘 챙겨주는 것은 물론이며 할인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순식간에 맺어지는 인맥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 외에 성대모사 방, 노래 불러주는 방, 북한말 쓰는 방, 무조건 웃기는 방, 전문분야를 이야기하는 방, 책 읽어주는 방 등등 주제는 정말 다양하다. 

 

어쩌면 요즘 같은 비대면 코로나19 시대에 이처럼 매력적인 SNS도 없지 않을까 싶다. 일단 얼굴을 보여야 한다거나 글이나 사진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다는 점이 엄청 매력적이다. 잠옷 차림으로 침대에 누워 말만 해도 되고 내키지 않으면 듣고만 있어도 된다. 언제 어느 방에 셀럽이 나타날지 모르고 운이 좋으면 그들의 대화에 살짝 껴볼 수도 있다. 물론 어디서나 그렇듯이 이상한 사람, 잘난척하는 사람, 혼자만 말하려는 사람도 만나게 되지만 언제든지 편하게 방을 드나들 수 있으니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된다. 

 

아무튼 지금 핫하게 떠오르는 클럽하우스가 반짝하고 떠올랐다가 금세 시들해질 오디오 서비스로 남을지 지금의 소셜미디어 판을 뒤집고 최강자 대열에 오를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새롭다"는 점에는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뜻밖에도 추억을 소환하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방에 들어가 대화하는 구조는 그 옛날 천리안, 하이텔 채팅방과 상당히 유사하고 모르는 사람과 목소리로 대화하는 것은 마치 폰팅을 떠오르게 한다. 그래서 별로 낯설지 않고 친숙한 느낌이다. 글 읽고 쓰는 것보다 말하고 듣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클럽하우스의 문을 두들겨 보아도 좋을 듯하다. 그리고 이 보이스 소셜미디어라는 새로운 시도가 앞으로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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